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 보는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반기문 총장의 방북 보따리'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북한방문 설이 화제입니다. 며칠 전 한국언론에 처음 보도된 싱싱한 뉴스인데도 한참 전에 예고된 잔치처럼 말이 무성합니다. 한국 청와대 관계자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일축했고 유엔 측도 사실확인을 하지 않고 있지만, '반 총장 방북설'은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하기야 반 총장이 평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방북 용의가 있다고 말했고, 실제 지난 5월 개성공단 방문이 북한의 일방적인 허가철회로 무산된 터라 방북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잠복해왔습니다. 한편으론, 남북 관계에 뚜렷한 개선 조치가 가시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 총장의 방북으로 유엔과 북한의 대화가 시작되고 남북 대화의 물꼬가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반 총장이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은커녕 북한에 이용만 당하는 셈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비아냥거림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이처럼 반 총장의 방북은 성사되더라도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우선, 반 총장 방북은 유엔 수장이 폐쇄적인 회원국을 직접 방문해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독려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로부터 외톨이가 된 북한에 유엔 회원국으로서 거듭나도록 설득할 계기라는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완고함으로 일관한다면 이번 방북은 사진촬영을 위한 만남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교수의 말대로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폐쇄적이지 않고 안정적"이란 점을 부각시킬 겁니다. 북한 매체는 유엔 수장과 마주 앉은 김정은을 '국제적 인물'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테고, 국제사회는 이들 보도에 쓸개즙을 맛본 듯 씁쓸해할 겁니다.
반 총장이 김정은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하고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 나아가 세계 평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될 겁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는 반 총장이 박근혜대통령의 메시지나 제안을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온 북한이 남북관계와 핵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지 의문입니다. 북한이 그 동안 전략적으로 되풀이해 온 '평화협정체결' 구호를 다시 한번 듣고만 돌아오는 멋쩍은 반 총장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반 총장이 김정은에게 인권문제를 꺼낼지 알 수 없지만, 하더라도 우회적으로 완곡하게 거론할 수는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을 향해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윽박지른 것처럼, 김정은에게 "인권탄압 중단하라"고 말하긴 힘들 겁니다. 김정은으로선 유엔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입니다. 반 총장을 평양에 불러놓아 유엔의 인권논의를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권 문제에 있어서 반 총장이 '남는 장사'를 하기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반 총장은 유엔이 관장하는 산하 기구들을 통해 과학, 교육, 경제 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 낙후된 북한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의 복리에 맞는 일입니다. 대북소식통은 북한이 요즘 경제와 과학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지원은 주민보다는 정권에 유익이 됩니다. 과학기술 지원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고, 경제지원도 고위층과 엘리트들의 배만 불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엔 관계자들이 입 조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반 총장 방북 자체도 공식 확인이 안 됩니다. 게다가 반 총장 방북이 확인된다 해도 그의 보따리에 무엇이 담길 지 집어내기 어렵습니다. 반 총장이 돌아오는 길에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전망대로 '김정은의 메시지'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지만 이마저도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만일 반 총장이 한껏 싸 들고 갔다가 하나도 팔지 못하면, 사상 처음 방북하는 한국인 유엔수장이란 기록이 빛 바랠 것이란 지적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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