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올해의 명인'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잡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나라는 국위 선양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가수 싸이가 그 선봉에 서 있고 북한에서는 최고 권력자 김정은이 중심에 있습니다. 싸이는 정치에 일면식도 없는 가수이고, 김정은은 북한체제를 이끄는 무소불위의 정치인이지만 각기 나라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점에선 같습니다. 싸이와 김정은은 모두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남다른 식견이 있을 겁니다. 싸이는 미국 동부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최근 자신의 음악비디오 '강남스타일'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영어권 나라들에서 회견할 때면 미국 유학시절 갈고 닦은 영어를 잘 활용합니다.
김정은은 10대에 스위스 베른의 리베펠트 국제학교에 다니며 영어와 도이췰란드어를 배웠지만, 특별히 외국어 실력을 발휘할 데가 없어 보입니다. 도발 행위만을 일삼아 국제사회에서 흔쾌히 초빙할 상황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리고 김정은 스스로 북한의 위상을 높이려고 세상 곳곳을 누빌 의향도 없어 보입니다. 유럽에서 유학해 개방과 개혁에 우호적일 것이란 전망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잘못된 일기예보처럼 허망한 일이 됐습니다.
남한의 싸이는 올해 35살입니다. 김정은의 생년월일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1982년생 또는 1984년생이 유력하니 30살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싸이와 김정은은 세대 차이를 느낄 사이는 아닙니다. 북한이 아무리 폐쇄사회라고 해도 남한이나 북한이나 어른을 중시하는 유교 전통의 뿌리가 깊습니다. 싸이는 남한을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겸손한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미국의 음악상 시상식에서는 머리를 깊이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인사법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 사람들인데도 싸이는 제 도리를 다했습니다. 남한의 국위 선양에는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항상 뒷짐을 쥐고 다닙니다. 아무리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아버지, 할아버지뻘 되는 인사들과 시찰을 다닐 때 예외 없이 두 손을 뒤로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진이 전파를 타고 세상에 전해집니다. 유교 전통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도 민망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흉내 낸다고 하지만, 과연 이런 자세가 북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을까요?
싸이와 김정은은 든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무리지만, 넉넉한 집안 출신은 남들보다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창의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싸이는 틀에 박힌 생각을 버리고 신선하고 기발한 일에 매진했고 '강남스타일'이란 음악비디오로 열매 맺었습니다. 김정은은 내로라하는 집안 배경을 갖고 있지만, 그의 생각은 전혀 새롭지 않고,그의 행동은 도무지 창조적인 것과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저 할아버지, 아버지의 길을 곧이곧대로 따라가기에 급급합니다. 김씨 일가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2천400만 주민의 삶은 안중에 없는,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반대로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그 짧은 기간에 이처럼 괄목상대할 발전을 이룬 것을 보면,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들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들 텐데,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는 길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개방했다간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겠지요. 그럼 중국은 어떻습니까? 중국을 개방해 지금의 확 달라진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등소평)이 중국 사람들에게서 역적 취급을 받습니까? 나라를 개방해 서구 사회에 팔아넘긴 매국노로 격하됐습니까? 덩샤오핑은 중국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인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로 칭송받습니다.
올해도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력주간지 '타임'은 해마다 '올해의 인물'을 선정합니다. 올해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뽑혔습니다. 그런데 올해의 인물 선정 과정에서 김정은과 싸이가 나란히 후보에 올랐었습니다. 독자들이 인터넷으로 하는 온라인 투표에서는 김정은이 1위를 기록했었습니다. 싸이는17위였습니다.
이 투표결과만 보고 북한 매체는 미국잡지가 김정은을 '올해의 명인'으로 뽑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자랑했었습니다. 김정은이 왜 올해의 인물 유력후보로 거론됐는지 진짜 이유를 모르는 가 봅니다. 김정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것은 그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국제사회를 온통 들쑤셔놓은 문제아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싸이는 신 나는 노래와 춤으로 지구촌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하나로 묶어 인기를 끌었지만, 북한의 김정은은 세습독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세상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주목을 받았을 뿐입니다.
싸이는 남한의 위상을 좋은 방향으로 높였지만, 김정은은 북한의 위상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남한은 싸이 덕에 유명세를 탔고, 북한은 김정은 탓에 또 한 번 오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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