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눈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기인 17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기인 17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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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의 눈물'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세계적 대문호인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쓴 비극작품 '오셀로'에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남편의 한탄이 나옵니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아내를 내치며 그녀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처럼 거짓이라고 공격합니다. 악어의 눈물은 악어가 덩치 큰 먹이를 삼킬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생리현상인데, 마치 먹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로 해석되면서 마음에 없는 위선적인 눈물을 빗대어 널리 사용됩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뒤 며칠 간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이 한국과 일본 언론을 통해 확산됐습니다.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 명령서에 서명했지만, 처형 5일 후인 지난 17일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하기 직전까지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의 눈물의 진의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김정은의 눈물은 말 그대로 '악어의 눈물'일지 모릅니다. 나이 어리고 경험이 짧은 자신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실권을 쥐고 뒤에서 권력을 마구 휘둘러 내심 못마땅했는데 마침 절호의 기회가 와 순식간에 제거하고는 속내와 다른 눈물을 흘렸을 수 있습니다. 북한의 진정한 지도자는 '백두혈통'인 자신인데, 감히 곁가지인 장성택이 제 분수도 모르고 나대는 꼴을 참다못해 처형하고 속 시원하게 흘리는 눈물일지 모릅니다. 이 경우라면 김정은의 권력장악이 확고하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김정은이 '눈엣가시'로 여겼던 장성택을 뽑아버렸지만, 그래도 지난 2년간 자신의 집권을 음으로 양으로 거들고 보살펴준 공을 떠올리니 그 동안 쌓인 미운 정 고운 정에 눈물이 앞을 가렸을지 모릅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처형했지만, 앞뒤 못 가린 집권 초기에 보호벽 역할을 해준 부분이 생각나 슬퍼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김정은의 권력이 불안정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김정은이 장성택과 피 한 방울 섞인 사이는 아니지만, 혈육인 고모 김경희의 남편이니 한 다리 건너 가족의 정을 나눈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경희가 하나밖에 없는 친오빠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을 귀여워했을 터이고, 장성택이 김정은을 예뻐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아도 김정은의 가슴에는 적어도 자신을 사랑한 고모 김경희의 남편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정치를 떠나 고모부를 처단했으니 울컥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도 김정은의 눈물을 권력의 이상 기류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입니다.

김정은의 눈물이 장성택 처형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자신이 최종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그처럼 빨리 처형될 줄 모르고 있다가 당혹해 했다는 겁니다. 이 경우, 김정은의 결정과 처형 진행에 괴리가 드러납니다.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서 승인했지만, 실제 장성택 제거를 계획하고 주도한 세력은 장성택 처형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김정은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물쭈물하다 김정은의 마음이 흔들려 장성택이 처형을 면하면 '정적 완전 제거'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우려가 깔렸을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의 눈물이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면 김정은의 권력은 이미 불안정하거나 앞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장성택을 제거한 세력이 김정은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김정은의 권력을 넘보는 수준까지는 아닐 겁니다.

그런데 만일 김정은의 눈물이 복잡한 장마당에서 엄마 손을 놓친 어린아이의 울음처럼 두려움과 절박함에서 나왔다면 상황은 달리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명목상 최고지도자이지 원로들의 권력다툼 틈바구니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끌려가며 흘린 눈물이라면 앞으로 북한의 정국이 어느 쪽으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김정일 추도식에서 "아버지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고 애끓게 흘린 눈물이라면 김정은은 아버지뻘 되는 원로 실세들의 '허수아비 백두혈통'에 불과할 겁니다.

북한은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파국으로 치달을지 가늠하기 곤란합니다. 김정은 눈물의 의미도 제대로 읽어내기가 어려운 현실이니, 불투명한 북한 정치를 파헤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