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출어 통행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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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출어 통행료'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21세기 화두는 '자원확보'입니다. 이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지만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국가의 생존전략이기도 합니다.

지도자는 자원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내 것은 차곡차곡 쌓아 잘 보관하고, 이제 남의 것에 손을 댑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에서 움직입니다.

천연자원이 빈약한 남한은 원유와 광물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경제의 사활이, 아니 국운이 걸려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니 중동과 남미지역의 나라들과 자원외교에 쉴 틈이 없습니다.

중국은 우주에서 별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전 세계의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자국에 자원이 무진장 매장돼 있는데도 일단 남의 것을 쓰고 보자는 계산입니다. 고속성장을 유지하려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중국지도자가 외국을 방문하거나 외국 정상이 중국에 들를 때 자원협력 논의는 고급식당이 선보이는 특별요리처럼 주목을 받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유전탐사와 개발참여를 약속받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광물을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장개방 이후 벌어들인 달러를 마구 풀고 있습니다.

자원확보를 위한 중국의 열의는 북한에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북 자원투자는 오래된 얘기지만, 이미 북한 지하자원의 70%를 중국이 개발한다는 현실은 북한뿐 아니라 남한에도 놀라운 소식입니다.

특히 중국은 북한의 자원개발 여건이 열악한 점을 구실로 유리한 조건에 개발권을 따내고 있습니다. 철, 동, 금, 연, 아연, 몰리브덴 등 주요 광물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는 화물차가 줄을 있습니다. 굶는 주민이 없도록 효율적으로 활용돼야 할 북한의 소중한 자원이 헐값에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이 보유한 광물자원은 약 6조 달러어치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중국의 북한자원 빼 가기는 앞으로 더욱 왕성하게 진행될 겁니다.

외국에 대한 북한의 자원정책은 땅에서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후합니다. 라진항 1호 부두를 10년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중국에 주었습니다. 중국은 이 부두를 통해 연변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뱃길로 일본과 중국 동남부 지역에 보낼 수 있게 됐습니다. 바닷길은 중국의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입니다. 또 북한은 라진항 3호 부두 사용권을 앞으로 50년간 러시아에 주었습니다. 이는 러시아가 태평양에 진출하는 교두보입니다.

북한의 주변국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자원전쟁 벌이고 있습니다. 보물찾기 경기에서 여럿이 동시에 보물을 발견해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격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북한은 지하자원이나 해양자원을 저렴하고 손쉽게 다른 나라에 내주고 있습니다.

동해안 공해에는 어족이 풍부해 중국어선들이 자주 드나듭니다. 중국어선들은 북한해역의 물고기도 무차별적으로 그물로 쓸어담아 갑니다. 중국어선들이 종종 불법조업을 해도 북한의 해안경비대는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북한어부들도 얼른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으려 합니다. 중국어부들이 무주공산에서 활개치고 있으니 당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북한어부들은 바다로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해안경비대에 바치는 통행료 때문입니다. 종전엔 물고기를 잡은 뒤 일부를 통행료로 주었는데, 이젠 현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낙지를 잡는 5톤규모의 선박이 하룻밤에 내야하는 통행료가 (북한돈) 1만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노점상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자릿세를 뜯어가는 폭력배와 무엇이 다릅니까? 무역일꾼들이 벌어들인 외화 수입의 일정액을 통치자금으로 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관행을 본받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해안경비대가 돈을 내는 어부에게만 출어를 허락하니 현금을 준비하지 못하는 영세 어부들은 생계 걱정에 가슴이 타들어갑니다. 중국사람들에겐 관대하면서 정작 보살펴야 할 자국민에겐 깐깐하고 인색합니다. 자원을 선용해 주민의 생계를 돕는 게 아니라, 자원을 악용해 주민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자원정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