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전망대]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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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신년사'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은 남한의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신년사를 지금까지 세번 냈습니다. 신년사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한달 전인 2008년 1월과 2009년 1월, 그리고 2010년 1월 당보인 '로동신문,' 군보인 '조선인민군,' 청년보인 '청년전위'에 똑같이 실렸습니다. 북한의 2008년 신년사는 남한의 새정부를 의식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신년사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방해하는 친미사대와 매국배족 행위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일종의 권고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신년사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남한에 경고성 주문을 했습니다. 북한이 요구한대로 남한이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신년사는 핵문제와 대미 관계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미국에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자"는 교과서적인 원론에 머물렀습니다. 미북관계에 있어선 미국에 요구할 것을 하면서도, 경고보다는 권고 또는 제안에 가까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미국과 관계를 잘 해보려는 의중이 엿보였습니다.

북한은 2009년 신년사에서는 대남선동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통미봉남, 즉 남한을 고립시키고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신년사는 "남조선인민들은 자주, 민주, 통일의 구호를 들고 사대매국적인 보수당국의 파쑈통치를 쓸어버리며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한의 이명박 정부를 "북남대결에 미쳐 날뛰는 남조선 집권세력"이라며 통렬히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1년을 아주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신년사는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비추어졌습니다. 반면, 신년사는 반미선동을 가급적 자제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면서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잘 대해주면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미북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북한의 2010년 신년사는 지난 2년간 신년사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적어도 표현상으로는 과거와 확연한 차별화를 시도한 듯합니다.

2010년 신년사는 먼저 남북관계에 대해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북한)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민족화해와 협력을 적극 실현해야 한다"고 해 남한정부를 적대시할 대상이 아니라 협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북한은 2008년과 2009년 신년사에서 남한정부에 보여준 까칠하고 서슬퍼런 용어를 삼갔습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일단 겉으로는 남한정부와 대화를 통해 긴장을 풀어갈 용의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남북한 당국자들이 제 3국에서 비밀회동을 갖고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올해 안으로 남북정상이 만날 것이란 추측도 있습니다. 기대가 물거품으로 꺼질지 모르지만 새해 벽두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조심스런 희망으로 부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편 2010년 신년사는 미북관계에 대해서 "오늘 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데 근본 문제는 조미의 적대적 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라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선반도의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북한)의 입장은 일관하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 가능성을 원천봉쇄하지 않았다고 해서 6자회담에 복귀하거나 핵포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북한 핵 문제를 풀려는 과정은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올해도 지리하게 질질 끌 공산이 큽니다. 그래도 북한이 신년사에서 밝힌 협상의지가 현실화하고 결실을 맺었으면 합니다. 올해 북한의 신년사가 매년 반복돼 온 선전 선동의 복사본이 아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