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전망대] 젊은이들의 의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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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젊은이들의 의식변화'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2000년 미국 서점가는 일본계 미국인 로버트 기요사키와 기업가 샤론 레히터의 공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Rich Dad Poor Dad)를 사려는 독자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이 책은 부자들이 전하는 돈벌이의 비법을 소개했습니다.

사업가이면서 투자가인 기요사키는 이 책에서 부자가 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5가지와 함께 부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10가지 항목을 언급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책은 당시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월스트릿저널, USA투데이 등 유력지의 도서판매 순위에서 동시에 '상위 10위권'에 들면서 기염을 토했습니다. 기요사키가 '돈벌이'와 관련해 펴낸 10여 권은 총 2천600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한 때 서점에 가도 구입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돈벌이에 대한 책은 인기가 좋습니다.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특히 젊은 세대가 정치와 같은 무거운 사안보다는 실생활과 직결된 돈벌이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과거엔 돈벌이에 온 신경을 쓰는 사람에게 "돈을 너무 밝힌다"는 다소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표현을 자주 썼지만, 요즘 이런 말을 하면 되레 촌사람이라는 핀잔을 받게 됩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쓴소리를 듣습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게 아니고 돈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과거 동유럽 공산국가에서는 국가와 당이 일상생활에까지 깊숙이 개입해 주민들이 사상이나 이념에 푹 빠지고 돈벌이에는 다소 느슨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젠 동유럽 국가 사람들도 자본주의 공부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정정당당하게 돈벌이에 나서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고단하게 느낄 수 있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쉼 없이 배우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아끼며 자신을 갈고 닦습니다.

북한의 젊은이들도 점점 동유럽의 또래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경직된 사회라 자본주의 물결이 충분히 다다르지 못하고 있지만, 이슬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배어들고 있습니다.

북한의 개성공단에서 통역원으로 일하는 젊은 여성은 최근 북한을 방문한 미국 상원외교위원회의 프랭크 자누지 전문위원에게 "평양은 이제 과거이고 개성이 북한의 미래"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성은 영어도 잘하고 능력이 뛰어나니 평양의 외무성에 들어가 정부관리가 되는 게 어떠냐는 자누지 전문위원의 질문에, 주저 없이 개성의 미래에 승부수를 던지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사회에서는 공산당과 정부 조직에서 일하는 게 출세를 보장하는 길이란 인식이 보편화했지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엔 권력보다는 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당 간부보다는 사업가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국제안보협력센터에서 초빙연구원으로 있는 로버트 칼린은 최근 북한을 방문해서 젊은이들에게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물론 북한의 모든 젊은이의 생각이라고 단정하긴 곤란합니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의 정보연구실 동북아 과장을 지낸 칼린 연구원은 1974년 이후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한 북한통입니다. 칼린 연구원의 경험담을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한 피상적인 얘기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 젊은이들의 의식변화는 이제 시작단계입니다. 북한의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로운 삶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고 있습니다. 사업가가 돼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 나보란 듯 잘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