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전망대] 김정은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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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 찬가'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찬가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찬가는 그 주인공이나 주제를 가슴에 담아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나아갈 길을 바로잡도록 하는 노래입니다.

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찬가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겐 용비어천가가 있습니다. 이 찬가는 조선왕조를 세운 창업자를 기리는 노래입니다. 용비어천가는 '조선'이 하늘의 뜻에 따라 세워졌다고 노래합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27년, 즉 1447년 간행된 용비어천가는 한글로 엮어진 최초의 책이며 보물 제1463호로 지정된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자유의 고귀함을 드높이는 찬가도 있습니다. 동서독을 갈랐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째 되는 지난 9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대규모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단연 '베를린 장벽 도미노'였습니다. 베를린의 포츠다머광장과 브란덴부르크문 사이 2km 구간에 대형 인공 장벽을 연결해 놓고 차례로 쓰러뜨리는 행사였습니다.

폴란드 노조위원장으로 동유럽 민주화의 물꼬를 튼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이 첫 번째 인공 장벽을 넘어뜨렸습니다. 2km 구간에 이어진 장벽이 하나씩 넘어지고 마지막 장벽이 쓰러지자 독일 가수 폴 반 다이크가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통일을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동유럽 공산체제에서 자유를 목말라했던 사람들에겐 승리의 찬가입니다. 지금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에겐 희망의 노래입니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스포츠 정신을 기리는 찬가도 있습니다. "오 위대하고 거룩한 고대의 정신... 그 불멸의 가지로 만든 월계관…세계의 모든 민족 국민과…영원한 정신을 길이 빛내고…하나 되어 모두 함께 달린다."

그리스의 시인 코스티스 팔라마의 시에 그리스 작곡가 스피로스 사마라스가 곡을 붙여 만든 올림픽 찬가입니다. 이 찬가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 연주됐습니다. 그리고 1958년 올림픽 찬가로 공식지정됐고 1964년 일본 도쿄 하계올림픽의 개막식을 통해 세계만방에 울려 퍼져 지구촌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숭고한 의미를 주는 찬가가 있습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종말이 될 수는 없다…어떤 운명이라도 이겨 낼 용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를 지낸 시인 헨리 롱펠로가 지은 '인생찬가'의 한 대목입니다. 이 찬가는 삶이 고단할 때 용기를 주고 오만해지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줍니다.

다소 신비주의적으로 들리는 찬가도 있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왕…우레와 같은 웅변을 발하는…그는 다른 새들을 잡아먹는 새…다른 도끼들을 능가하는 도끼…해와 달을 쫓아갔던 은바다의 아들…" 이 노래는 아프리카에서 오랜 세월 구전돼왔습니다. 허황해 보이지만 이 찬가는 공적을 세운 부족장을 칭송하고 부족의 역사를 보전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북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을 칭송하는 찬가가 등장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을 띄우려는 찬가 제목은 '발걸음'입니다. "척척 척척척 발걸음…우리 김 대장 발걸음…2월의 위업 받들어…" 이 찬가에서 '김 대장'은 김정은을 비유합니다. 또 '2월의 위업 받들어'라는 대목은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을 고려해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북한 최고 작곡가인 보천보전자악단의 이종오가 작사 작곡한 '발걸음'은 최근 함경북도 예술극장의 개관공연에서 김 위원장이 보는 앞에서 합창으로 공연됐습니다. 북한은 이 찬가를 각급 단위에 조직적으로 퍼트리고 있습니다. 또 김정은 찬가 '발걸음'은 소묘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은 건국의 아버지도 아니고, 자유의 전도사도 아니며, 인생에 교훈을 줄 만한 일을 한 적도 없고, 북한사회를 위해서라도 뚜렷한 공적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의 '발걸음'이 과연 무엇을 위한 찬가인지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북한에서는 찬가조차도 제 모습을 간직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