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사회주의문명국’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청취자 여러분, 군대생활 하실 때 지뢰에 대해서 교육을 많이 받으셨을 겁니다. 지뢰는 적군을 저지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땅에 묻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민간인도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어 비인도적인 무기로 분류됩니다. 전쟁을 겪은 한반도의 남북 군사분계선 주변엔 엄청난 수의 지뢰가 묻혀 있습니다. 지뢰는 민족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중국과의 일부 국경지역에 지뢰를 매설하고 있습니다. 한국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에 탈북을 차단하기 위해 이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지뢰가 밟으면 터지는 살상용 말뚝 지뢰인지, 아니면 선을 건드리면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조명 지뢰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명 지뢰라고 해서 경비대가 체포한 탈북자를 잘 타일러 정중히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보나 마나 수용소로 끌고 가겠지요.
북한이 이 지뢰를 중국 인민군이 국경을 넘어올 것을 우려해 설치한 것은 아닐 겁니다. 이 지뢰는 북한주민을 겨냥한 것입니다. 독재체제에서 도저히 살길이 없어 고향을 떠나는 탈북자들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북한은 적군에게 사용해야 할 무기를 민간인, 그것도 자국민을 염두에 두고 묻었습니다. 김정은으로의 정권이양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새 정권은 국민을 상대로 초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힘들게 사는 주민을 보듬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이처럼 비인도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서슴지 않고 집행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김정은에게 넘어가는 요즘 북녘 땅엔 공포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권단체인 피랍탈북인권연대는 탈북자에 대한 무차별 총격으로 김정은 체제의 공포정치를 증언했습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40대 중반의 남성 3명이 양강도 혜산시에서 꽁꽁 언 압록강을 건너다 사살됐다고 인권연대는 밝혔습니다. 중국의 장백 쪽에서 이들 탈북자를 기다리던 협조자들은 총에 맞아 얼음판에 쓰러진 탈북자들이 북한군에 질질 끌려갔다고 전했습니다. 김정은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면서 탈북자에 대한 단속이 더 강화됐음을 말해줍니다.
북한이 국경경비대 외에 약 1만 명의 병력을 국경지역에 추가 배치했다는 다른 인권단체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인근 주민들과 유착관계로 탈북을 방관할 수 있다고 판단해 국경경비대원들의 근무지를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김정일 사망 이후 체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민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탈북 당사자를 사살하든가 수용소에 가두든가 하는 벌로는 주민단속이 어려운지, 과거 왕조시대에나 있던 ‘3대 멸족’을 시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혜산시 일가족 4명이 김정일 장례기간인 지난달 19일 밤에 압록강으로 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돼 이들은 물론이고 따로 사는 부모와 형제의 가족들도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김정은 체제는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선 어떠한 반인륜적인 정책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강성부흥구상을 실현하는 투쟁에 모든 힘과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야 한다’고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로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 문제’를 꼽았습니다. 주민이 굶으면 체제가 안정될 수 없음을 깨닫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강성국가를 이루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대혁신’ 대비약’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대대적인 혁신이 없인 식량문제를 풀 수 없고 그러면 국가의 커다란 웅비도 불가능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북한을 ‘사회주의문명국’으로 빛내자며 주민을 독려했습니다. 문명국은 국민이 일어나면서부터 끼니 걱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면 적어도 배는 곯지 않는 나라입니다. 문명국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탈이 날까 두려워 쥐 죽은 듯 쉬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해 사회와 나라에 득이 되게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문명국은 권력 있는 자가 일반인을 위협하고 고통을 주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 모두에 기본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입니다.
북한 신년공동사설에서 ‘문명국’ 바로 앞에 ‘사회주의’란 단어가 붙었다고 해서 ‘문명국’의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의 대가가 공평하게 분배돼야 한다는 다양한 사상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표방한 ‘사회주의문명국’ 구현에는 주민들이 노동에 대해 합당하고 공평한 대가를 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반영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의지는 다른 쪽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막다른 길에 처한 탈북자의 등에 총을 겨누고, 지뢰를 묻고, 가까운 가족 모두를 엄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북한이 그토록 목청 높여 부르짖는 ‘사회주의문명국’인가 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