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먼의 ‘위대한 생각’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체육관에서 데니스 로드먼 등 미국 프로농구(NBA) 출신 선수들의 농구경기를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체육관에서 데니스 로드먼 등 미국 프로농구(NBA) 출신 선수들의 농구경기를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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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위대하다는 로드먼의 생각'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이것은 세계를 위한 위대한 생각입니다”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은 최근 미국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자신의 북한방문 의미를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물론 로드먼의 방북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반발을 샀습니다. 로드먼이 말한 대로 인류를 위한 ‘위대한 생각’은 반드시 다수의 지지를 전제로 하진 않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대다수 군중이 이해하지 못해도 종종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줍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고귀함을 외면한 ‘위대한 생각’은 절대 인류를 이롭게 하지 않습니다.

만일 로드먼이 부모나 형제 또는 가까운 이웃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북한에 1년 넘게 갇혀 있어도 소위 ‘위대한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북한에 갔을까요? 과거 시카고 불스 농구팀에서 같이 뛰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북한에 억류됐어도 김정은 앞에서 농구를 하려고 북한에 갔을까요? 아마 가지 않았을 겁니다. 대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것을 북한에 촉구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생각이기 때문이지요.

안타깝게도 로드먼의 ‘위대한 생각’에는 부모, 아내, 자녀가 애타게 석방을 기다리는 미국시민 케네스 배씨의 존엄성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 방송에 직접 나와 배씨의 석방을 위해 도와달라는 여동생의 절규가 로드먼의 ‘위대한 생각’에는 칭얼대는 소리 정도로 들렸나 봅니다. 더욱이 배씨 억류사건의 배경과 법적 절차 등을 충분히 살피지 않고, 배씨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러 억류된 것이라는 로드먼의 무신경한 발언에 과연 그의 ‘위대한 생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못 헷갈립니다.

로드먼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생일에 축가를 불러주었습니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역적으로 몰아 적절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 아직 세계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행복한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불렀습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김정은의 권자에 머리를 조아리고 기뻐서 눈물이 난다면서 축가를 부르는 것이 ‘위대한 생각’이라면 그것은 로드먼과 김정은만이 싸고돌 ‘위대한 생각’일 겁니다.

로드먼은 북한 농구선수들과 친선경기를 하는 게 목적이라며 정치적으로 연계하지 말라면서도 자신의 방북을 ‘농구 외교’에 빗댔습니다. 1970년대 초 미국과 중국의 교류에 징검다리를 놓은 ‘탁구 외교’를 흉내 냈습니다. 그러나 농구 외교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로드먼의 그 ‘위대한 생각’은 인간의 존엄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현장엔 발을 붙일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인권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생각이라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반인륜이 판치는 세상에 위대한 생각을 이식하려면 아주 기본적인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그것은 인권에 대한 북한정권의 진정성입니다. 인권을 이에 낀 고춧가루 정도로 여기는 나라에선 위대한 생각도 한낱 망상으로 흩날리고 맙니다.

로드먼의 ‘위대한 생각’은 이번 방북에 동행한 전직 프로농구 동료 선수와 은퇴선수협회에도 냉대를 받았습니다. 한 전직 선수는 일행보다 먼저 북한을 떠나 중국 베이징 서두우 공항에 도착하고는 중죄를 범한 사람처럼 얼굴을 가린 채 취재진을 피했습니다. 방북 시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로드먼을 따라 북한에 간 게 부끄러웠나 봅니다. 또 다른 동료는 로드먼의 언행에 불만을 표시하고 방북을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은퇴선수협회도 로드먼이 주도하는 미국 농구경기가 친선을 위한 다리 역할을 하려면 적절한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로드먼의 경솔함을 꼬집었습니다.

로드먼은 자신의 ‘위대한 생각’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꼬리를 내렸습니다. 케네스 배씨에 대한 생각 없는 발언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술을 마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맨정신으로 직접 발표하지 않고 홍보담당자를 통해 이메일로 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고 했지만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사과인지 모르겠습니다.

로드먼의 ‘위대한 생각’의 한가운데 김정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로드먼에게 ‘절친한 친구’입니다. 절친한 친구라면 친구를 위해, 우정을 위해, 듣기 싫어하는 얘기도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정은에게 인권에 대해 충언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로드먼은 인권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았습니다. 절친한 친구라는 말이 그저 입바른 소리였나 봅니다.

로드먼과 김정은은 서로 필요에 의해 ‘우정’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들의 어설픈 만남에 세상 사람들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