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사라져야 할 ‘북한어린이복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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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사라져야 할 북한어린이복지법'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잡니다.

취학 전이거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돼 보이는 남한 어린이 5명이 함께 멀리 시골로 ‘겨울철 극기훈련’에 나섰습니다. 영하 10도나 되는 추운 날씨인데 여자 어린이도 한 명 있었습니다. 따뜻한 현대식 아파트에서 불편한 것 없이 살던 어린이들이 난방 시설이 엉성한 시골 마을에서 이틀 밤을 잤습니다.

얼마 전 남한의 한 TV 방송은 아빠와 어린 자녀가 함께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내보냈습니다. 어린이들은 문지방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방에서 자야 했고, 아빠가 만들어주는 ‘식사 아닌 식사’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첫날밤엔 엄마에게 전화하며 서럽게 우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이들은 씩씩해졌고 아빠와 함께 주어진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지냈습니다.

학교나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생활 체험을 했습니다. 남한 어린이는 대부분 경제발전으로 잘 먹고 편안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부모는 혹 자녀가 나약해지지 않을까, 이처럼 담대하게 키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도 강건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나라의 미래이고 기둥이기 때문이지요.

남한에는 ‘어린이 헌장’이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헌장입니다. 이 헌장의 마지막 항목은 어린이를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쓸모 있는 재목으로 키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어린이답게 잘 먹고 튼튼하게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한반도 북녘땅에 사는 어린이들은 만성적인 영양결핍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나 정신 건강에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이 지난해 북한당국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다섯 살 미만 북한 어린이 10명 중 3명꼴로 발육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남한 통일부 조사 자료를 보면, 여섯 살부터 열 살까지의 탈북 남자 어린이의 평균 신장이 110.6센티미터로 남한 어린이의 124.6센티미터보다 14센티미터가 작았습니다.

키는 보통 생후 2년간의 영양상태에 크게 좌우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그러니 어려서 잘 먹지 못하는 북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키가 쑥쑥 클 수 있겠습니까? 성장에 필요한 기본적인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 세 끼 제때 챙겨 먹는 어린이가 과연 몇 할이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키가 크지 않는 자식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모는 한숨만 내쉴 뿐입니다.

그러나 평양의 고위층은 남한에서 생산한 ‘키 크는 약’을 중국사업가에게 주문해 자녀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키가 작은 것이 못마땅한지 자기 자식만큼은 키가 작지 않도록 애를 씁니다. 실제 이 약이 얼마나 효험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돈 많은 고위층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러나 봅니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끼니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배급제는 허울뿐이고, 자녀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고루 먹이고 싶지만, 북한의 현실에선 ‘사치스런 생각’일 뿐입니다. 자녀 키 크기에 투자할 여력은 더더욱 없습니다. 영양실조 어린이가 어른이 돼 마음과 정신이 건강하길 바라기는 어렵습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서야 국제화 시대에 다른 나라들과 경쟁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덴마크 구호단체가 최근 황해남도 해주의 고아원에 들러 영양상태를 조사했더니, 절반가량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고 합니다. 북한 어린이의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어린이복지법’에 서명했습니다. 국무부는 법을 이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제 나라 어린이도 아닌데, 법안을 제출하고 의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수정안을 만들고 마침내 법제화했습니다. 탈북 고아는 물론이고 탈북 아동 모두에게 미국 입양의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북한정권이 “내정 간섭하지 말라”고 쏘아붙일 거라 예상하면서도 북한 어린이가 불쌍해, 오로지 인도주의 차원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법이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를 간절히 기다려봅니다. 그땐 북한이 민주화되고 잘살게 돼, 탈북 고아도 없고 영양실조 어린이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