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보따리’로 경제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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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빈 보따리로 경제살리기'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남한에서 ‘이인삼각’이란 놀이경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조인데 다리가 네 개가 아니라 세 개로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 사람의 오른발과 다른 사람의 왼발을 하나로 묶어 두 사람의 다리를 세 개처럼 만든 뒤 빨리 달리는 경기입니다. 이 경기는 소학교(초등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자주 즐깁니다.

북한에서는 ‘발 묶고 뛰기’로 불리는 이인삼각 경기의 핵심은 두 사람의 조화입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호흡을 잘 맞추느냐에 따라 성적이 좌우됩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빨리 뛰는 재주가 있어도 옆 사람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땅바닥에 고꾸라집니다. 조금 느려도 일정한 속도를 내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이인삼각 경기는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두 사람이 한 사람의 발처럼 움직여 나가는 ‘찰떡궁합’을 보여줘야 함을 일깨웁니다. 나라를 운영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이 열악한 경제상황을 인식했는지 최근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산하로 각 도 소재지에 ‘경제개발지도위원회’를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의 중앙 계획경제 체제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는지 예단할 순 없지만 각 지방에 경제를 담당하는 주체를 신설한 것은 시선을 끌만 합니다.

경제개발지도위원회의 주 임무는 외국의 투자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겁니다. 나라에 투자할 만한 돈이 없으니 외국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죠. 돈 많은 남한이나 미국도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니 북한의 투자 유치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북한은 국제 신용도가 낮아 외국 투자를 끌어들이려면 다른 나라들보다 더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상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정책결정자들의 손발이 맞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조치를 내린 쪽은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개발지도위원회 신설을 추진했을 겁니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경제일꾼, 특히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무역일꾼들이 이 조치에 부응할 수 있는 후속 조치가 따라야 합니다. 무역일꾼들은 외국에 나가 오래 일하면서 현지의 경제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고 인맥을 형성해 북한이 외국 투자를 유치하는 데 산파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 투자는 대개 규모가 크고 위험도 크므로 투자자들은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무역일꾼들이 현지에서 인맥을 구축할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새해 들어 중국에서 일하는 무역일꾼들을 줄줄이 소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오래 체류한 일꾼을 점진적으로 새로운 일꾼으로 대체해 업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의도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파견된 지 얼마 안 된 일꾼들도 무차별적으로 불러들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경험이 얕은 이들은 나라경제에 보탬이 될만한 정보나 인맥을 쌓지 못한 채 ‘빈 보따리’로 귀국해야 합니다. 이번 조치의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얼마 전 중국에 체류하는 무역일꾼들 가운데 여럿이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나온 것이라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경제일꾼들의 대거 소환이 경제보단 정치적 고려에서 나왔을 공산이 크다는 겁니다.

한쪽에선 경제를 살리자며 경제위원회를 설치하고 다른 쪽에선 체제위협을 우려해 경제일꾼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이인삼각 경기에서 한 사람은 앞으로 뛰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뒤로 가려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북한과 미국과의 지속적인 긴장관계를 보면 미국의 대북 투자는 가까운 장래에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남북관계도 널뛰기하듯 가변적이라 남한으로부터 안정적인 투자를 끌어내기가 간단치 않을 겁니다. 러시아가 최근 북한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요즘 양국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북한이 믿을 나라는 중국입니다.

역사적 관계나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보더라도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기가 그나마 손쉬울 겁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 무역일꾼들이 적지 않은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을 마구잡이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경제야 죽을 쑤든 말든 개의치 않는가 봅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비효율적인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담당기관과 체제안보기관의 입장이 다르고 각기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삐걱대는 국정을 조율하는 것은 결국 최고지도자의 몫입니다. 설령 일부 무역일꾼들의 일탈행위가 있더라도 대국적 차원에서 경제 살리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북한에서 최고지도자 김정은뿐 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는 정책들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는 주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을 겁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