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풍산개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의 대표적 토종견은 풍산개입니다. 풍산개는 남한의 대표적 토종견인 진돗개와 함께 한반도 남북을 대표하는 명견입니다. 그래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차 북한을 방문했을 때 풍산개 한 쌍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양강도 풍산(지금의 김형권군 일대)에서 오래 전부터 많이 길러져 온 풍산개는 하얀색 계통의 짧은 털이 특색입니다. 얼굴은 둥그렇습니다. 성질이 온순하고 지혜로우며 충성심이 강해 주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경계대상과 대치할 때는 거칠고 강합니다. 경찰견으로 많이 애용되는 셰퍼드와 겨뤄도 지지 않습니다. 풍산개는 원래 강한 체질이라 북한의 산악지역에서도 잘 적응하며 사냥할 때 따라다니면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개입니다.
풍산개의 인기는 북한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남한에서도 풍산개는 진돗개와 더불어 그 충성심과 끈기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풍산개는 다 성장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릴 적에도 지혜로움과 끈기, 그리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냅니다.
남한의 어느 마을에 사는 풍산개가 얼마 전 주인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한두 살 먹은 풍산개가 아니라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앳된 얼굴의 풍산 강아지가 지혜와 끈기 그리고 자신을 보살펴 준 주인을 향한 보은의 충성심으로 생사의 경각에 처한 주인을 구한 것입니다. 이 소식에 남한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북한의 명견인 풍산개는 역시 다르다며 흐뭇해했습니다.
풍산 강아지가 주인을 구한 날은 지난 1월 15일입니다. 강원도 강릉시의 어느 마을에서 치매를 앓는 80대 노인이 무작정 집을 나갔습니다. 이날은 영하 10도나 되는 강추위가 맹위를 떨쳐 한파주의보가 내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모자나 장갑은 고사하고 평상복 차림이었습니다. 주인 할아버지는 평소 풍산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챙겨준 자상한 주인이었습니다. 집 주변 50미터 밖을 나가지 않던 풍산 강아지는 이날 웬일인지 할아버지를 따라 집에서 300미터나 떨어진 야산까지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쓰러졌고 저체온증으로 사경을 헤맸습니다.
할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라간 풍산 강아지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자 주인의 살을 물고, 혀로 얼굴을 핥았습니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자 할아버지 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깨우려 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야산에서 잠들면 얼어 죽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풍산 강아지는 어떻게든 할아버지가 잠들지 않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잡고 놀이터에 간 손자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쓰러져 의식을 잃자 할아버지를 깨우려 흔들며 엉엉 우는 광경을 떠올립니다.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멀리 나가지 않는 풍산 강아지마저 없어지자 집안 식구들은 실종신고를 내고 수색에 나섰습니다. 가족과 구조대는 5시간 만에 야산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할아버지와 그 배 위에 근심 어린 눈빛으로 올라앉아 있는 풍산 강아지를 발견했습니다. 풍산 강아지의 영웅적 행동은 의식을 되찾은 할아버지가 기억을 되살리면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위기에 처한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살린 풍산 강아지의 소식에 남한 사람들이 더 진한 감동을 한 것은 풍산개가 북한의 대표적인 명견이란 점 때문입니다. 남한의 명견인 진돗개의 용맹함과 충직함을 익히 알고 있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명견의 피를 가진 풍산 강아지의 ‘어른스러움’에 민족적 동질감을 느꼈나 봅니다.
사실 이 풍산 강아지는 외모로는 거의 풍산개이지만, 실제 진돗개 ‘아버지’와 풍산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풍산 강아지는 남북한의 대표적 혈통을 이어받아 주인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남북 관계가 삐걱대는 터라, 극한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한 어린 풍산 강아지를 보는 남한 사람들의 시선은 각별합니다. 북한에서 풍산개의 혈통이 잘 보전되길 바란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한 때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중국 무역업자들에게 풍산개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풍산개 순종을 찾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혈통보전이 체계적으로 되지 않아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혈통 보전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도 이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사람 먹고살기도 버거운데 가난한 주민들이 무슨 수로 풍산개 혈통 보전까지 꼼꼼히 챙길 수 있겠습니까? 순종 풍산개의 혈통이 잘 보전되고 남한의 순종 진돗개와 어울려 총명하고 충직한 제2, 제3의 풍산 강아지가 나온다면 남북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텐데 말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