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손전화 관심

0:00 / 0:00

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과도한 손전화 관심'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폰 즉 타치식 손전화 제조사인 ‘애플’의 본사가 자리한 캘리포니아 샌호제 근처에 사는 제 딸이 얼마 전 스마트폰을 도둑맞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커피숍에 갔다가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없어졌습니다. 울화통이 터졌지만 스마트폰은 생활필수품이므로 하는 수 없이 당장 수백 달러를 주고 새것을 샀습니다. 다시는 스마트폰을 도둑맞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 도둑 때문에 화나고 짜증나는 것은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게 번 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산 스마트폰이 순식간에 주머니나 가방에서 어디론가 사라지니 그렇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면서 돈 되는 스마트폰을 훔쳐가는 도둑이 늘고 있는 까닭입니다. 남한이나 미국사람보다 스마트폰을 구입하기 힘든 북한 주민에게 스마트폰 도둑은 더더욱 경계 대상입니다. 내 돈 주고 산 스마트폰을 지키느라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북한 주민의 짜증 지수를 확 올립니다.

그나마 도둑만 조심하면 된다면 짜증은 그런대로 견딜 만합니다.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고 단속만 잘하면 도둑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총이나 칼을 들이대면서 강제로 스마트폰을 빼앗아 가는 강도가 아니면 말입니다. 만일 강도처럼 강제적으로 스마트폰을 빼앗는다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국내용 스마트폰 즉 타치식 손전화를 단속하는 북한의 ‘1080상무’ 성원들은 강도는 아니라도 강도처럼 주민의 스마트폰을 멋대로 빼앗아 검사합니다. 스마트폰 안에 무슨 내용이 저장돼 있는지 뒤집니다. 불법전화도 아니고 정식으로 등록한 스마트폰인데도 남한 음악이나 영화가 저장돼 있는지 검사합니다. 북한에서도 점차적으로 필수품이 되고 있는 스마트폰의 속살을 마구 헤쳐보는 당국의 처사에 진저리가 나 스마트폰 등록을 해지하는 주민도 있습니다. 겉으로 소리는 못 내지만 속으론 “더럽고 치사해서 안 쓴다” 라고 투덜댈 겁니다.

개인의 스마트폰까지 나라에서 조사하고 뒤지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젊은이들을 경제발전을 위해 투입하지 않고 주민들을 괴롭히는 1080상무 성원으로 부리는 정부 당국에 신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등이 가려운데 등을 긁어주진 못할망정 가렵지 않은 다리를 심하게 긁어 상처를 내는 꼴입니다. 국력을 낭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폐까지 끼치는 일입니다.

하기야 남한에서도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 때는 정부 당국이 주민의 사생활에 간섭해 불편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가방을 들고 가는 젊은이를 길에서 마구 세워 가방을 열게 하고는 불온서적이나 반정부 유인물이 있나 하고 뒤지곤 했습니다. 어떤 날은 길을 가다 경찰들의 단속 때문에 여러 번 가방을 열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의심 살 만한 물건이 없으니 가방을 열어 보인들 걱정할 바는 없었지만 짜증 나는 일임엔 틀림없습니다.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국민 화합을 저해하고 민심이반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공권력이 행사되는 것을 국민이 잘 인식하지 못할 때 그것이 좋은 공권력입니다. 정치가 있는 둥 마는 둥 국민이 잘 느끼지 못할 때 그것이 좋은 정치입니다. 지도자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국민이 그의 행보를 잘 모를 때 그는 괜찮은 지도자입니다. 중국 고대 철학자인 노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600년 전 지도자에게 ‘조용한 다스림’의 덕목을 설파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애독하는 그의 도덕경에는, 왕이 티를 내지 않아 백성이 왕을 모르면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바른 왕도’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지도자 김정은은 주민의 생각과 행동 깊숙이 파고 든 권력의 촉수를 손바닥의 스마트폰에까지 뻗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