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중국인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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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나선중국인자치구'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는 어떤 모습일까?

2034년 함경북도 나진 선봉. 경제특구였던 나진 선봉은 수년 전 중국인자치구로 변모했습니다. 중국이 나진항 사용권을 획득한 지 20여 년이 흘러 나진 선봉엔 중국인들이 대거 모여 삽니다. 나선 지역 인구는 2014년에 14만여 명이던 것이 20년 만에 4배가량 늘어 50만 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남한의 서울인구가 고도성장기인 1960년대부터 20년간 4배 가까이 증가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나선특구 주민 가운데 중국인이 90%를 차지합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자치구로 인정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북한 땅이지만 나선 중국인자치구에는 평양의 입김이 제대로 미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저 멀리 중국 북경 풍향의 영향권 내에 있습니다.

이곳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학교를 지어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칩니다. 중국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중국인 대표를 뽑아 자치구 운영을 맡깁니다. 북한 당국에 세금은 내지만 재정, 치안도 자율적으로 꾸려갑니다. 또한, 북한군과 중국군이 양국 협정에 기초해 함께 군사기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국군은 해마다 한 차례 북한군과 연합훈련을 합니다. 중국군은 이 밖에 여러 차례 단독 훈련도 합니다. 나진항에는 중국 핵잠수함이 정박하는 기지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선 중국인 자치구는 북한 내 중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선자치구 내 중국인이 북한 전체로 보면 많은 수가 아니지만,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영향력은 북한 당국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2010년 나진항 1, 2호 부두 사용을 시작으로 4,5,6호 부두 건설계약 및 50년 사용권을 획득한 중국은 동북부 지역 항구를 확보해 경제적 효과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나선을 중국인 자치구로 인정받는 지정학적 이득까지 얻은 것입니다.

가상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나이 50대에 접어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오랜 술 담배 등으로 인한 지병으로 기력이 약해졌습니다. 이 무렵 내각에서 경제관료들이 남북자유무역 협정 가능성을 논의하고 남한 측에 타진했습니다. 그러자 군 수뇌부는 김정은을 찾아가 결사반대를 주장했고 경제관료들은 모두 숙청됐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제발전을 기대했던 주민들이 웅성거렸고 물방울이 모이듯 평양 시내를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남북자유무역 협정을 계속 추진하라며 이에 반대한 군부를 성토했습니다.

시위가 며칠 간 이어지자 군부가 김정은을 부추겨 무력진압에 나섰고 적지 않은 주민이 죽고 다쳤습니다. 성난 주민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거리에 쏟아져 나왔고 김정은은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황급히 중국으로 도피했습니다. 주민들은 임시정부를 구성하느라 분주했고 궁극적으로 남한과 통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남한은 북한 주민의 노력을 전폭 지지한다면서 국제사회와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남북한이 온전하게 민주적으로 평화롭게 하나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훼방을 놓았습니다. 만일 남북이 통일되면 나선 중국인 자치구에 사는 중국인들의 안위가 위험에 처한다는 구실로 자치구 내 군사 시설을 접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항하는 북한군을 무력으로 위협해 쫓아냈습니다. 자치구 내 중국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자치구는 북한 인공기 대신 온통 중국 오성홍기로 물들었습니다.

중국인들은 긴급 선거를 통해 중국에로의 귀속 여부를 압도적 찬성으로 결정했고, 중국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헌법을 후다닥 개정해 나선자치구를 중국영토로 병합했습니다. 중국과 겨룰 상대가 아닌 북한은 말로만 ‘나선은 북한 영토’라고 되풀이할 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얘기는 가상입니다. 나선특구에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 산다고 해서 중국인자치구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20년 후의 상황은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최근 러시아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정정불안을 틈타 러시아인이 대거 거주하는 크림반도자치국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것을 중국정부는 똑똑히 지켜보았을 겁니다. 미래에 북한 정국이 불안해질 때 중국정부가 중국인이 많이 모여 살게 될 나선 특구에서 보여줄 행태도 러시아의 전격 군사작전과 유사할지 모릅니다.

중국은 나선특구를 중국 동북 3성의 수출입항으로 거의 독점 활용할 심산입니다. 훈춘과 나진 간 50킬로미터 도로가 완공되면 나선특구는 중국의 만주경제권의 한 축이 될 것이고 중국은 나선특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나선은 면적으로 보면 북한 땅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20년 후 경제규모를 따지면 큰 몫을 차지할 겁니다. 또한,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인 나선 지역을 중국의 손에 맡겨둔다면 한반도의 전략적 관점에서도 위험천만입니다. 한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해 만에 하나 나선중국인자치구가 생겨나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