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다람쥐의 무력시위'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비가 스산하게 내린 며칠 전 동네에서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고양이와 다람쥐가 쫓고 쫓기었습니다. 고양이에 금방 잡혀 먹힐 것 같았던 다람쥐가 재빠르게 어느 집의 나무담장을 기어 올라 갔습니다. 살이 뒤룩뒤룩 찐 회색 고양이는 담장을 기어 올라가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담장 위 다람쥐를 한참 쳐다보던 고양이는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람쥐는 고양이보다 약자입니다.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도 못하는 약자입니다. 그러므로 정면 대결은 꿈에서나 해볼 일입니다. 그런데 다람쥐가 고양이에 맞서 “한판 붙자”고 했다면 정상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 고양이도 “이 녀석 왜 이러지”하며 의아해했을 겁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힘으로 맞설 게 아니라 지략으로 응수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군사력에서 약소국은 강대국에 무력시위로 나설 게 아니라 지혜로운 정책으로 관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에 성공한 뒤 미국에 ‘한판 붙자’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노동신문은 최근 기명 논설에서 “3차 지하핵시험 성공으로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온갖 적대 세력들의 도전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북한이 세 차례 핵실험으로 핵 능력에 자신감을 갖더라도, 또 이미 두서너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미국과 견줄 수는 없습니다. 막말로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핵무기 수천 개를 보유한 미국에 도전장을 낼 수 있겠습니까? 군사력이 경제력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고려하면 북한과 미국의 정면 대결은 하나마나 한 일이란 점을 어린이도 잘 알 겁니다. 북한의 위협이 남한을 겨냥한 것이라 해도 남한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 모를 리 없습니다.
조선 시대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해남의 우수영에서 왜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군사력에서 열세였던 조선수병을 이끈 이순신 장군은 부녀자들에게 남자 차림을 하도록 해 옥매산에 무리 지어 올라가 빙빙 돌게 했습니다. 멀찌감치서 이를 본 왜군들이 조선 병사가 아주 많은 것으로 착각해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물러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무력에서 열세이므로 저돌적으로 정면승부에 나서지 않고 지략으로 주민들을 보호한 것입니다.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연의’에도 약자의 지혜를 강조한 대목이 있습니다. 강성한 위나라가 유비의 촉나라의 전략요충지인 서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위나라는 서성의 병력이 1만 명 정도라는 첩보를 접하고는 대장군 사마의에게 10만 대군을 주고 정벌에 나서도록 했습니다. 사마의의 대군은 성을 에워쌌습니다.
한편, 촉나라의 책사 제갈량은 일대일 승부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음을 간파하고 계책을 세웠습니다. 미리 성안의 주민과 병사를 피신시키고는 성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한가하게 홀로 성 위에서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사마의는 머리 좋은 제갈량이 성문을 열어젖히고 여유작작 악기를 타자 무언가 숨은 계략이 있지 않을까 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잘못 진격했다간 기습을 당할 것으로 염려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갈량의 연주소리가 격해지자 기습 신호로 알고 10만 대군을 후퇴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제갈량의 지략은 무력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나라와 주민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줍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제갈량이 무리하게 무력시위를 해 정면승부를 걸었다면 끔찍한 결과를 맞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미국보다 군사력에서 형편없이 열세인 북한은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선군정치가 “미제와 그 주구들의 북침전쟁 광란을 단호히 짓부셔버리는 무적의 힘”이라며 힘 자랑을 합니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공격은커녕 북한이 하루 빨리 국제사회의 평화 제의를 받아들이길 학수고대할 뿐입니다.
북한의 강경 발언을 대외 과시용이라고 하는 분석도 있고, 국내 결속용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떻든 북한의 호전적 자세는 미북, 남북 관계를 냉랭하게 하고 국제사회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뭉툭한 앞니 두어 개를 드러내고 고양이에 덤비려는 다람쥐처럼 말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