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적국에 공개한 작전회의'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새벽 4시. 일반인은 물론 군인도 보초병을 제외하곤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께,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북한군은 전광석화와 같이 파죽지세로 남한 땅을 짓밟았고 남한군은 허둥대며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북한군이 기습 남침한 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남한을 복속시키는 데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전략적 측면에서 기습공격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다들 자는데 공격한 치사한 북한군"이라고 한다면 말한 사람만 바보가 됩니다.
밤 12시. 역시 세상이 고요한 시각입니다. 1968년 1월 18일 자정 북한 특수부대 소속 31명이 휴전선을 넘었습니다. 청와대를 습격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임무를 띤 이들은 남한군 복장을 하고 무장한 채 야음을 틈타 서울을 향해 한 발 한 발 진격했습니다. 다행히 경기도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발각돼 한바탕 충돌이 빚어졌고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했지만, 이들의 청와대 습격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추후에 청와대 경호원이 만일 "대통령이 사는 곳인데 공격계획을 적어도 몇 시간 전에는 알려주는 게 예의 아니냐"라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입니다.
밤 9시. 육지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남아 있지만, 바다는 칠흑같은 어둠이 깔렸을 시각입니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께 한반도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남한 해군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을 받았습니다. 북한이 기습 공격하는 바람에 이렇다 할 대응 한 번 못하고 남한 해군 46명이 숨졌습니다. "군인답게 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몰래 공격하느냐"고 해봐야 기습공격을 가한 측은 콧방귀도 뀌질 않습니다. 기습공격을 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테니 쥐도 새도 모르게 그리했겠지요.
오후 2시 30분. 한참 분주하게 돌아가는 때입니다. 기습 공격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시각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면전이 아니라 치고 빠지기식의 공격이라면 대낮이라고 못할 바는 아닙니다. 오히려, 대낮에 활동하는 많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북한이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께 서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습니다. 남한 민간인과 군인 20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습니다. 남한군이 대응 포격을 가해 북한도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남한 사람들의 불안심리는 매우 고조됐었습니다.
북한의 대남 공격 전략은 기본적으로 기습입니다. 공격 대상은 물론, 시점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전 작전계획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북한에 국한된 사안이 아닙니다. 사실 어느 나라나 군사 작전 계획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없습니다. 공개했다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제 무력 충돌 시 패할 가능성이 큰 까닭입니다.
며칠 전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이 파격적인 보도를 했습니다. 그 어느 나라도 하지 않은, 북한도 그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고사령부에 군 수뇌부를 불러 놓고 긴급 작전회의를 주재하면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사격 대기 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회의실 벽에는 미국 본토 타격계획 작전계획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지하벙커나 은밀한 장소에서 해야 할 비밀 작전회의 현장을 세상에 드러낸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최근 미국의 B-52, B-2 폭격기의 한반도 비행 훈련에 반발해 작전회의 사진을 공개했을 수 있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맞서겠다는 것이죠. 그리고 작전회의실 벽면에 기록된 북한군사력 현황을 보면, 일반적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허위 내용을 공개해 자국의 군사력에 대한 정보를 왜곡하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미국이나 남한에 작전회의가 알려져도 손해 볼 게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진짜 작전회의는 별도로 은밀하게 하면 되니 말입니다. 애초에 공격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미국에 위기감을 야기하려고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공격보다는 겁만 주고 만다는 것입니다. 위기 조장의 주체세력으로 부각돼 은근히 몸값을 올리려는 속셈도 깔렸겠지요. 아울러 '전쟁놀이'에 극심한 피로감을 보이는 북한주민을 다잡으려고 사진을 공개해 공포 분위기를 지속하려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작전회의 공개는, 역설적으로 북한의 기습공격은 없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미 미국과 남한은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기습이 아니라도 공격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격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나라, 정상적인 지도자가 감행할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전쟁놀이에 지친 것은 북한주민만이 아닙니다. 국제사회 모두 아주 피로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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