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 보는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집단 탈출과 고립 탈출'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장마철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처럼 새삼스럽지 않게 여겨져 온 탈북 소식이 최근 갑자기 화젯거리가 됐습니다. 대남 공작업무를 담당한 북한 정찰총국 출신 대좌(남한 대령)가 남한으로 망명했고, 중국에서 일하던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귀순한 까닭입니다. 남한정부는 이번 사건을 북한 권력층의 이상징후로 보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탈북을 묵인했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탈북자들이 합법적인 여권으로 출국했다고 밝혔고, 남한정부는 외교 마찰과 신변 안전 등을 이유로 탈북자들의 입국 경로를 함구하고 있지만 북한정권은 싸움 걸 듯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북한은 남한엔 ‘국정원의 유인탈북’이라고 비난했고, 중국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변절’이란 표현을 쓰면서 분노를 토해냈습니다.
북한은 남한정부가 4월 8일 식당종업원 집단탈북과 입국 사실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 성경에 나오는 예수를 배신한 제자 유다의 이름을 빌어 ‘유다들의 명줄’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대남 선전용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가 공개한 8분 남짓한 분량의 동영상에 이번 집단탈북 얘기는 없지만, 그 동안 탈북한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을 비판하는 내용이 가득 차 있습니다. 동영상은 탈북자를 ‘인간 쓰레기’란 원색적인 단어로 묘사했습니다.
북한이 과거처럼 집단탈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남한 정부의 판단대로 해외 식당 종업원은 성분도 좋고 중산층 이상인 데다 한 두 명도 아니고 13명이 함께 남한으로 갔다는 사실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충격일 겁니다. 북한당국은 충격에 넋 놓고 있을 여유도 없는지,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 있는 북한 식당에 대한 정리작업에 착수하고 종업원들에게 ‘남한사람과 접촉하지 말라’는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라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식당종업원들이 탈북한 이유는 남한 생활에 대한 동경, 북한 체제선전의 허구성, 무리한 외화상납 요구 등으로 축약된다는 게 이들을 면담한 남한정부의 설명입니다. 억압과 가난으로 점철된 북한 생활에 대한 염증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려는 행동으로 표출됐다는 겁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의 문성극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은 종업원들을 즉각 돌려달라고 나올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북한이 싫어서 나왔고 돌아가면 모진 고초를 겪을 게 뻔하니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지적입니다.
높은 백두산 천지 물이 낮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흐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방벽을 쌓으면 어떻게 될까요? 탈북자가 계속 나온다고 해서 국경경계를 강화한다고 될까요? 북한 정부는 탈북, 그것도 집단탈북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진단하는 게 우선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입니다. 북한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날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면 ‘제발 남한으로 가라’고 신신당부해도 이런 집단탈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인식입니다.
미국의 남쪽에 멕시코 즉 메히꼬가 있습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이동 간에 험난한 고비가 여러 차례 있어도 불법 월경을 감수합니다. 가난한 삶을 청산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미국에서 돈을 벌어 가난한 고향 가족 친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섭니다. 멕시코 정부는 이를 막지 않습니다. 방벽도 없습니다. 떠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으니 막지 않는 겁니다. 또 떠난 사람들이 멕시코 정부가 못하는 돈벌이를 해 송금하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들도 죽을 고생을 해 남한에 정착한 뒤 열심히 돈을 벌어 북한의 가족이 살도록 송금합니다. 그런데 집단탈북 사건 후 북한정권은 물리적 사상적 방벽을 높이고 압제의 두께만 더할 기세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살길 찾아 탈출을 결행하듯 북한 정권도 살길을 찾아 고립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걸 언제 깨달을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