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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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의 혁명'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2010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혁명의 불길이 번졌습니다. 10여 개국에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고 이 중 4개국에선 한 발 더 나간 혁명으로 발전했습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의 혁명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들을 축출했습니다. 이들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42년 동안 권력의 단맛에 취했다가 순식간에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끌려 내려갔습니다. 민생을 챙기는 데 소홀하고 민심을 헤아리는 데 게으름을 피우다 성난 주민들에게 벌을 받은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 조국을 떠난 자도 있고, 제 땅에서 죽임을 당한 자도 있습니다.

혁명은 통상 권력의 급변을 말합니다. 혁명의 뿌리는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의 응축된 분노입니다. 이들 네 나라에서 생활한 서방 외교관들의 기록에는, 기근, 인권유린, 특권층의 발호가 혁명의 씨앗으로 지적됐습니다. 한마디로 국민이 "더는 못 참겠다"하며 떨쳐 일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민심이 하늘에 닿아 장기집권 독재정권을 빈대떡 뒤집듯 완전히 뒤엎은 것이지요.

묘하게도 이들 나라에서 혁명을 가능하게 한 토양이 북한과 아주 흡사합니다. 김일성 주석은 46년간 신과 같은 존재로 북한을 호령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강산이 거의 두 번이나 바뀔 17년간 한반도 북녘을 지배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병으로 사망하면서 권력을 고스란히 제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집권기간이 2년도 안 되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독재는 이미 60년이 넘었으니 집권기간으로 볼 때 혁명의 씨앗은 고도의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혁명의 또 다른 원인인 '기근'은 북한의 오늘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입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으로 수많은 주민이 속절없이 쓰러져갔습니다. 갈비뼈가 앙상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도 굶주림은 많은 북한 주민의 일상입니다. 배고픈 아픔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데, 북한 정권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혁명의 원인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인권유린'입니다. 그리고 인권유린과 북한정권은 '실과 바늘'의 관계와 같습니다. 인권이란 개념이 아예 없는 정권이라서 그런지, 국제사회가 그토록 인권보호를 당부하는데도 "우리는 아무 문제 없다"고만 합니다. 인권유린의 피해자인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됩니다. 북한에서는 정치범 수용소에 억울하게 갇힌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주민들에게도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혁명은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일어납니다. 북한은 '평양 공화국'으로 불립니다. 평양 주민들은 비교적 잘 살고 나머지 주민들은 빈곤합니다. 온갖 특혜는 평양 시민에게 집중됩니다. 대다수 주민은 평양 시민의 넉넉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계부속품처럼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평양 시민처럼 제때 배급을 받지 못해도, 평양처럼 전기나 식수가 공급되지 않아도, "원래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인가 보다" 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외부 소식을 접하는 주민이 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소위 '평양공화국'의 부패 고리와 이를 유지하기 위한 주민 수탈의 실체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처럼 혁명의 여건은 북한에 이미 완비돼 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김정은의 혁명활동'을 주요뉴스로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혁명활동보도'란 별도 영역을,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의 혁명활동'이란 고정란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혁명활동은 관심을 끌만 합니다. 진정성이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유가 없고 인권이 유린당하며 주민들이 배를 곯는데 특권층만 호의호식하는 북한에서 자유와 인권을 회복하고 굶주리는 주민을 구하는 혁명을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혁명 활동에는 정치범수용소를 폐쇄한다든지, 이동과 통화의 자유를 보장한다든지, 식량난을 원천적으로 해소한다든지 하는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되레, 선군정치를 앞세워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가득합니다.

인권, 자유, 복지 면에서 60여 년간 잘못된 길을 가느라 한 참 뒤떨어졌으니 이제라도 두 배, 세배 더 빨리 바른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그저 잘못된 길을 계속 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손에는 핵, 다른 손에는 미사일을 들고 두 배, 세 배 더 무대포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김정은의 '혁명활동'은 북한에 절실한 혁명을 이끄는 활동이 아니라 혁명에 반하는 활동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