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보는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의 두 개의 전선'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아프리카 북서쪽에 위치한 모로코의 국제공항에서 북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며칠 전 전달받았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이 현지에 들렀다가 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핸드폰으로 찍은 것입니다. 단조로운 복장 차림의 이들은 공항 대기실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그 중 한 명은 왼 손으로 머리를 괸 채 깊은 고뇌에 찬 듯 했습니다.
모로코에는 북한노동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인접국에 파견 나왔다가 모로코 공항을 경유해 귀국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가 생겨 소환명령을 받고 조바심에 귀국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해진 근무 연한을 마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향의 가족을 만날 기쁨에 설레는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유엔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에는 약 2천300명의 북한노동자들이 비슷한 처지에서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 13명이 얼마 전 남한으로 집단 탈출한 뒤, 대북소식통들의 전언대로 북한당국이 외국에 나가있는 근로자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사상교육을 강화하며 중국에 나와 있는 일부 유학생을 소환 조치하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시점이라, 모로코 공항에서 사진에 찍힌 북한 사람들에게서도 왠지 범상치 않은 곤혹스러움이 묻어 나옵니다.
이 북한인의 고뇌에 찬 모습은 김정은 정권의 무모함에 힘들어하는 북한주민과 국제사회의 속앓이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지금 김정은 정권은 ‘두 개의 전선’에서 도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 주민에 대한 횡포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입니다.
김정은 정권의 지칠 줄 모르는 횡포에 북한주민은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외화 흐름이 원활치 않자 북한당국은 아쉬운 대로 주민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습니다. 생필품이 제재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활용해 군부, 보위부 등 권력기관이 운영하는 무역회사를 통해 중국에서 대거 들여오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팍팍한 주민의 호주머니 사정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팔아 수익을 챙기려는 계산이라는 게 대북소식통의 지적입니다.
그래도 물건을 팔아 외화를 거둬들이려는 것은 양반입니다. 주민 돈을 거저 가져가겠다고 나서기도 합니다. 대도시에 보안원을 대거 투입해 차량단속을 하면서 벌금(범칙금)을 부과합니다. 수백 미터마다 단속반을 배치해 음주운전자나 범죄용의자를 색출하듯 지나가는 차량을 세우고 트집을 잡습니다. 잘 굴러가는 데도 외관이 지저분하거나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자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라며 노동현장에 동원한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이 정도면 벼룩의 간을 빼먹는 악랄한 행태와 진배없다는 게 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이러니 민심이 부글부글 끓지 않을 수 없겠지요.
김정은 정권의 막무가내 식 도발은 나라 밖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4차 핵실험에 이어 중거리 미사일을 몇 차례 쏘아대더니 며칠 전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 언론성명을 내고 이를 규탄했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점잖게 대응할 뿐입니다. 중동지역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IS)에는 연합군이 합동 군사 공격을 가하지만,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는 북한에는 한반도의 지정학 특수성 때문에 군사적 응징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추가 핵실험을 할 경우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는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을 거라 단정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유엔을 방문한 리수용 북한 외무상도 국제사회를 만만하게 봐서인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실험을 중지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기존의 핵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독일을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예상대로 이 제안을 일축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전략에 학습효과가 있어 북한의 ‘꼼수’에 쉽사리 말려들지 않습니다.
북한주민도 이젠 쥐 죽은 듯 참고만 있지 않습니다. 중동 카타르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들이 노동착취에 분개해 최근 현지 경찰서로 탈주했다고 한국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북한 주민의 불만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북한의 ‘철옹성’ 밖에는 국제사회가 사방을 에워싼 채 문을 열라고 함성을 지르고, 성안에선 주민들이 밖에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라고 아우성입니다. 사면초가에 처한 김정은이 ‘두 개의 전선’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