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역적’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정권이 언론을 동원해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를 싸잡아 한민족의 역적으로 몰았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참극을 불러오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월 22일 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한국의 현 정부를 “동족대결에 환장이 된 역적패당”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노동신문은 ‘거족적인 성전’이라는 기명 글을 비롯해, 지면 곳곳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를 “특대형 도발망동”을 하는 “만고역적”이라고 마구 후려쳤습니다.
‘역적’은 제 나라나 민족, 그리고 그 통치자를 반역한 자를 말합니다. 누구든 ‘역적’ 소리를 들으면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게 됩니다. 충신이 제 민족과 나라에서 칭송 받는 반면, 역적은 모든 사람에게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깁니다. ‘역적’이란 말은 이처럼 으스스해지는 단어입니다. ‘역적’이란 표현은 파괴력이 엄청납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사용돼선 안 됩니다.
‘역적’이란 말은 왕조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왕에게 반기를 들다 실패하면 역적으로 몰려 3족이 멸했습니다. 왕은 또 다른 반란의 씨앗을 제거하고 일벌백계하는 차원에서 9족까지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군대를 일으켜 총칼로 권력을 잡은 게 아니라,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지도자가 됐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빼앗는 폭압 정치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에게서 “맘에 들지 않는 지도자”로 불릴 수는 있지만 ‘역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북한정권이 이런 시대착오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북한 정권 스스로 왕조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방증할 뿐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왕조시대와 같은 세습체제에 익숙해져 ‘역적’이란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바깥세상 사람들에겐 답답하게 들릴 뿐입니다. 북한 정권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고 해서 역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북한정권의 사고방식이 단세포적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그 많은 무고한 주민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과거 왕조시대에 ‘역적’이 거론될 때 그 나라는 예외 없이 뒤숭숭했습니다. 백성이 먹고 사는 게 힘들어 민심이 흉흉하고 군왕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을 때가 잦았습니다. 왕은 반란이 일어나면 관련자들을 역적으로 처단했습니다. 이 때 왕은 동요하는 민심을 다잡기 위해 통상 사건을 확대하고 부풀렸습니다. 자신의 실정에 대한 백성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호재로 삼았습니다. 북한정권도 다르지 않습니다. 장거리 로켓발사 실패로 실망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다시금 휘어잡기 위해 ‘공공의 적’이 필요한 상황이라 남한의 이명박 정부를 역적패당으로 몰아세우나 봅니다.
청취자 여러분, 북한의 김씨 일가와 남한의 이명박 대통령 중에 누구 역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가 남북한 7천만 동족의 역적입니까? 누가 제 일가의 배만 채우고 제 국민은 배를 곯게 했습니까? 누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습니까? 누가 민심을 외면한 채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했습니까? 누가 국제사회에서 나라의 위상을 높이기는커녕 질타만 당하게 했습니까? 누가 평화를 갈망하는 지구촌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력도발을 일삼았습니까?
역적은 국민을 배고프게 하는 지도자, 국민에게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지도자, 권력을 세습하는 지도자, 무력도발로 평화를 깨는 지도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정권이 역적입니다. 한민족의 역적이고 국제사회의 역적입니다. 그리고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역적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