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헐값에 넘기는 민족자산

0:00 / 0:00

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헐값에 넘기는 민족자산’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학자들 가운데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앨빈 토플러 박사가 3년 전 섬뜩한 전망을 해 많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한 적이 있습니다. 토플러 박사가 2008년에 “앞으로 10년 내 세계에 물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던 것이지요. 3년 전 전망이니 이대로라면 앞으로 7년 내 물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겁니다.

토플러 박사의 경고를 무심히 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미래의 충격’(Future Shock)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등 저서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족집개처럼 집어냈기 때문입니다. 20세기에는 석유를 둘러싼 분쟁이 잦았다면 21세기에는 물을 놓고 나라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것이란 주장입니다. 지구촌 인구는 급증하는데 자원은 제한돼 있으니 생존을 위한 자원전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안보전문가인 마이클 클레어도 저서 ‘자원전쟁’(Resource Wars)에서 21세기 국제사회가 감내해야 할 일로 자원을 둘러싼 국가간 충돌을 꼽았습니다. 클레어는 이 책에서 자원분쟁이 노골화해 국가 간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했습니다. 인류의 분쟁 역사의 상당 부분이 자원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지만 21세기엔 그 정도가 더 첨예화할 것이란 얘깁니다.

요즘 자원확보 움직임은 나라마다 사활을 건 투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쓸만한 자원이 많은데 힘이 약한 나라는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지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만큼 온갖 제품을 생산해내는 중국은 어마어마한 원자재 소비국입니다. 중국의 자원확보 대상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비교적 가난하면서도 자원이 넉넉한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중국은 무진장한 달러보유액을 풀어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차관을 제공하고 때론 자원을 긁어모으는 대신 무기를 대주기도 합니다. 또는 현지의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구 뻗어나가는 중국의 자원확보 행보가 북한에까지 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양질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나 경제가 거덜 나다시피한 북한에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2년 북한으로부터 광물자원을 5천만 달러어치 수입했는데 2010년에는 수입규모가 8억 6천만 달러어치로 급증했습니다. 8년 만에 17배나 뛴 셈이지요. 중국은 이 기간에 북한의 광물자원, 특히 석탄과 철광석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나라 살림이 파탄지경에 이른 북한으로선 중국이라는 ‘큰 손’이 국경을 맞대고 있어 비교적 간편하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우대고객’으로 섬겨야 할지 모릅니다. 특히 강성대국의 원년으로 정한 2012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북한주민에게 내건 거창한 공약을 부분적으로라도 실현하려면 중국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필요하겠지요.

북한은 잇단 도발로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고 광물자원 생산을 위한 기반시설이 열악한데다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고 정권 내 부정부패까지 만연해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러니 중국으로의 수출은 북한경제의 젖줄이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이런 현실이 장기적으로 북한 경제에 득 대신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당장은 사정이 급해 앞뒤 가릴 형편이 아니겠지만,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중국에 ‘헐값’에 넘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의 광물채굴은 재래식 방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채굴 장비는 물론 도로, 철도, 항만 등 운송체계도 영 말이 아닙니다. 북한은 채굴에 필수인 전력까지 부족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생산량을 늘리겠습니까? 중국은 북한에서 광물자원을 수입하더라도 여전히 배고픈 상태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중국이 북한 광산에 전력을 공급하고 인근 도로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려고 합니다. 중국은 북한의 기반시설을 개보수하더라도 싼값에 광물을 수입할 수 있어 남는 장사라는 계산에섭니다. 우물에서 바가지로 물을 길어올리는 게 미흡해 자동펌프로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격입니다.

중국은 북한의 광물자원을 대규모로 생산해 가져가겠다는 심산입니다. 1997년부터 2010년 8월까지 북한에 투자한 중국기업 10개 중 약 4개가 채광산업에 집중돼 있음이 중국의 자원확보 움직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개미핥기가 개미들을 무더기로 훑어 먹듯 중국은 북한의 광물자원을 모조리 쓸어갈 기세입니다. 한국의 광물자원공사의 자료에 나온대로 북한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 55억달러 어치의 금이 제값에 팔릴지도 미지수입니다.

전문가들은 국가 간 자원전쟁을 우려하지만 정작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힘없는 북한은 힘 센 중국의 의도대로 끌려갈 공산이 큽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민족의 융성을 위해 소중히 쓰여야 할 자원이 이러다간 중국의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허투루 소진될지 모릅니다. 김정일 정권은 알짜배기 자산을 뭉텅뭉텅 헐값에 내어주면서도 헛구호인 ‘강성대국’만 외쳐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