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와 총정치국장의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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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국무총리와 총정치국장의 퇴진'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남한의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청취자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북한 매체에서 남한정부 비방용으로 신이 난 듯 보도했으니까요.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 수백 명의 승객이 침몰하는 배에서 나오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처럼 단체여행에 들떴던 학생들이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꽃다운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그 부모와 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구조 과정에서 애태우던 국민은 영결식에서 또 한 번 가슴을 저미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조사 중이지만, 국민은 남한 정부의 대처방식에 화가 났습니다. 유가족들은 정부 관료들에게 ‘우리 아이를 살려내라’고 애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선장과 승무원, 그리고 선박회사에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책임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업무와 관련해 관리, 감독과 구조에 미흡한 정부에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켜켜이 쌓인 분노는 유가족들에게서만 나온 게 아닙니다. 국민의 공분으로 변했습니다. 국민은 세월호에 탔다가 비명에 간 어린 생명이 마치 제 자식, 제 친구인 양 아파했습니다. 정부는 이 점을 깨닫고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 다음인 서열 2위 국무총리가 사직서를 냈습니다. 행정 책임자로서 세월호 참사로 말미암은 국민적 분노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국무총리가 물러난다고 해서 아이들의 싸늘한 주검에 온기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지만, 행정책임자로서 사죄의 표현을 한 겁니다.

민주사회에선 이처럼 책임정치가 보편화됐습니다. 책임의 소재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엔 사안을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정부는 국민 다수의 공분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을 잘 보듬는 게 지도자와 정권의 으뜸 덕목이기 때문이지요.

민심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가르침은 남한이나 북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노예를 해방해 존경 받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민심을 읽는 지도자의 자세를 누구보다 강조했습니다. 그는 150여 년 전 남북전쟁 즉 노예해방 전쟁의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문구는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또렷하고 간결하게 묘사한 명문구로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링컨 전 대통령의 연설 문구는 바로 ‘책임정치’란 말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한시라도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에 소홀해선 안 되고, 국민을 다치게 하거나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거리낌 없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겁니다.

책임정치의 의미를 좀 더 확대하면, 지도자의 거취는 사사로운 권력 놀음의 결과에 좌우돼선 안 되고, 오로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을 때, 민심을 거슬렀을 때 결정돼야 한다는 겁니다. 권력은 절대적으로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인 까닭입니다. 권력은 국민의 뜻에 따라 탄생하고 변화하는 것이지, 권력자들의 다툼 거리가 돼선 안 된다는 겁니다. 민심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권력 변화는 정국 불안의 표출이며, 민심을 뒤숭숭하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도 책임정치가 있을까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얼마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 요직에 앉혀 명실상부한 2인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최룡해를 총정치국장에서 해임하고, 대신 당 비서직을 주었습니다.

최룡해가 좌천됐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신중론도 있어 최룡해의 위상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북한 2인자의 거취가 민심과는 별 연관 없이 표면화했다는 점입니다. 주민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거나 민심 이반 정책을 주도했다가 실패했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정권에 대한 주민의 공분이 하늘을 찔러 2인자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최룡해가 훌륭한 지도자란 뜻이 아닙니다. 정치는 지도자와 국민의 맹약이란 기본 원칙이 북한에선 헌신짝처럼 내팽겨쳐졌다는 게 문제란 겁니다.

민주국가는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합니다. 민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입니다. 지도자의 거취는 민심의 향배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정치는 주민의 마음이나 정서와는 무관해 보입니다. 북한 정치는 민심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김심’ 즉, 김정은의 마음만을 무서워하는가 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