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그들만의 철판구이'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학창 시절 단골로 가던 서울의 한 식당에 가로 1미터 세로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철판이 있었습니다. 철판 밑에는 연탄불이 있어 철판을 달궜습니다. 친구 서넛과 함께 철판 주위에 앉으면 주인아주머니가 순대 한 접시와 깻잎, 상추, 마늘을 별도로 가득 가져다 철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철판구이 집은 별도의 출입문이 없고 식탁도 덩그러니 두 개밖에 없는 간이식당으로 시끌시끌한 장 바닥의 한 쪽에 있었습니다. 저희가 한 철판을 차지하고 다른 손님들이 다른 철판을 점령하면 더는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영세한 식당이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에 있는 간이식당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철판 밑 연탄에서 피어오르는 몸에 나쁜 가스를 마시면서도 소주 한 잔에 철판구이 요리를 먹으며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철판구이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겐 훌륭한 영양공급처이기도 했습니다. 철판구이 집은 ‘고향 맛 집’과 같았습니다. 철판구이는 배를 든든하게 해주고 마음마저 넉넉하게 해주었습니다. 크지 않은 철판이었지만, 주인아주머니의 훈훈한 인심과 친구들과의 진지한 대화는 몸과 마음을 재충전했습니다.
분위기가 좋다 보니 철판이 조금 더 커 좀 더 많은 친구가 함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철판의 4배 크기인 대형철판이 등장했습니다. 남한의 고급식당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북한에도 이런 대형 철판을 갖춘 식당이 등장했습니다.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쯤 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대형 철판이 조명을 받아 번득였습니다. 철판 한가운데 고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모자를 쓰고 단정하게 차려 입은 여자 요리사가 미소를 띤 채 요리하고 있었습니다. 요리사는 고기 위에 냄새를 없애주는 후춧가루 또는 맛을 내는 소금을 뿌렸습니다. 고기는 지글지글 먹음직스럽게 잘 익고 있었습니다.
평양 대동강 변 주민편의시설인 ‘해당화관’의 철판요리입니다. 개업을 앞두고 요리시범을 보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아내 리설주를 비롯해 최룡해 총정치국장, 현영철 총참모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 정권 실세들이 모였습니다. 북한이 최근 자랑하듯 공개한 사진에는 철판요리가 신기한 듯 모두 흥겨운 모습이었습니다. 눈이 모두 철판 위 고기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의자 등받이에 두 팔을 올려놓고 양손을 깍지 낀 김정은은 요리사의 손놀림에 어린아이처럼 신 나 했습니다.
요리가 끝난 뒤 김정은과 정권 실세들은 그윽한 향기의 포도주를 곁들여 잘 익은 고기를 즐겼을 겁니다. 그리고 이심전심으로 ‘김정은 정권 만만세’를 결의했을 겁니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만찬’입니다. 안타깝게도 북한주민은 철판구이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해당화관 사진을 보고 입맛만 다셔야 합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최근 ‘북한이 정말 잘하는 7가지’를 소개했습니다. 땅굴 파기, 위조지폐 제조, 해커 양성, 대규모 선전행사 등 대체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꼰 것들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전 세계로부터 진심으로 칭찬들을 소재가 있습니다. 바로 동네마다 대형 철판을 설치해주고 주민이 원할 때 구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핵이나 미사일 개발비용으로 주민에게 철판구이를 공급하면 충성심은 저절로 생기고 정권은 한결 더 단단해질 겁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