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개혁조치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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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개혁 조치 1호'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올해 70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느라 강행군을 했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건강이상설을 깔아뭉개듯 열차로 장거리 여행을 했습니다. 평양에서 전용기차로 출발해 중국 장쑤(강소) 성 양저우(양주)까지 약 3천km를 3일간 마구 질주했습니다. 장쩌민(강택민) 전 국가주석을 만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장쩌민이 주석이었을 때 2000년, 2001년, 2004년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데다, 덩샤오핑(등소평)이 시작한 중국의 개혁을 꽃피웠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장 전 주석에게 한 수 배우려고 먼 걸음을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개혁의 길로 이끌려고 김 위원장을 초청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어찌 됐든 알려진 대로 김 위원장이 장쩌민 전 주석을 만났다면 분명히 '개혁 특강'을 들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개혁의 완성자'로 불리는 장쩌민 전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북한이 살 길을 일러주었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양저우 한장 경제개발구 내 첨단산업단지에 있는 징아오(창오) 태양에너지유한공사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또 장쩌민 전 주석과 회동 예정지인 영빈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대형 할인상점에도 갔습니다. 김 위원장은 매장 안에 진열된 많은 상품 가운데 특히 쌀과 식용유 등 식품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북한 주민에게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는 게 큰일이다 보니 여기에 눈이 오래 머물렀나 봅니다. 김 위원장은 난징(남경)에서는 중국 최대 전자업체인 판다전자를 시찰한 뒤 난징 외곽 신도시 허스(하시)의 세계박물관, 청소년올림픽 주 경기장을 구경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중국 남부의 경제 중심지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1년 1월엔 상하이(상해)의 증권거래소, 첨단산업지구, 인간게놈연구센터를 방문했고 벤처단지가 있는 양저우도 들렀었습니다. 2006년 1월엔 광둥(광동) 성 광저우(광주), 선전, 주하이와 후베이(호북) 성의 우한, 우창지역을 두루 돌아보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2001년 상하이 푸둥지구의 발전상을 목격하고는 "천지가 개벽했다"고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돌아온 김 위원장은 경제개혁을 발표하고 남북 개성공단 개발에 합의하는 등 중국견학을 실천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진흙에 빠진 북한 경제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성 있는 개방과 개혁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개혁의 성패는 즉흥적이고 전시 행정적인 정책이 아니라 정책결정자의 의지와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김 위원장의 전격 방중을 보는 전문가들은 숨이 넘어갈 지경인 경제를 살리고,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을 인정받으려는 게 주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 실권자들을 만나 원조를 구걸하고 부자세습을 이어가도록 눈감아달라고 요청하는 데만 골몰했다면 개혁은 물 건너간 이야기입니다.

장쩌민 전 주석은 정계에서 물러났지만, 중국 최대 정치 세력인 상하이방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상하이방 출신입니다. 그러니 김 위원장이 장쩌민 전 주석을 만나 권력세습에 든든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귀국 후 주목할만한 개혁조치를 내놓지 않을 것이란 얘기지요.

하지만 만일 김 위원장이 도탄에 빠진 북한 경제를 살려내려 개혁 조치를 취한다면, 그 신호탄은 경제 문호를 열고 국제사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잇단 무력도발로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하자 북한은 중국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남의 집 유리창을 깨고는 친분이 두터운 옆집에 숨어드는 격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태도를 바꾸면 되련만 옹고집으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유경제체제가 굳건한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궤도를 이탈한 남북관계와 미북 관계가 다시 본 궤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잘 진행돼 남북교역이 재가동하고 나아가 미북교역이 시동을 걸면 한국과 미국의 자본, 물자가 북한에 들어가게 됩니다. 자유 경제의 수혈을 받은 북한 경제는 회생하게 되고 북한주민의 '영원한 숙제'처럼 여겨지는 끼니 걱정은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질 겁니다.

최근 한국 정부 당국자가 특권층이 사는 평양에서조차 식량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계획경제 체제가 더는 굴러갈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북한주민은 수십 년 간 쓸모없는 경제체제를 머리에 이고 어깨에 올려놓고 사느라 고달파합니다. 김정일 정권이 애지중지하는 계획경제 체제는 역사에 의해 사망선고를 받은 지 오래입니다. 계획경제는 죽은 생선이고 자유시장경제는 싱싱한 활어입니다. 선택은 김 위원장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언제든 북한을 돕겠다며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