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지도자와 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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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지도자와 치수’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 중국을 다스린 ‘순’ 임금은 황하의 잦은 홍수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합니다. ‘순’ 임금은 ‘곤’이라는 이름의 관리에게 치수책임을 맡겼으나 강의 범람을 막아내지 못하자 그의 아들 ‘우’에게 아버지가 못한 대업을 완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는 아버지 ‘곤’의 치수방식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무조건 댐을 만들어 물을 막는 대신 물길을 자연스럽게 터주는 방식으로 범람을 막았습니다.

치수에 성공해 수많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낸 ‘우’는 훗날 중국 최초의 왕조로 알려진 ‘하’ 나라를 건국했다고 합니다. ‘하’ 왕조의 실체가 역사적으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 그저 전설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우’ 임금의 이야기는 물을 다스리는 게 백성과 지도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치수 정책은 비가 너무 많이 오는 절기에 홍수를 막고, 물이 부족할 때는 평소에 저장해 둔 것으로 가뭄을 해결하는 묘를 살려야 합니다. 북한은 원래 수량이 풍부하고 산악지형이라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소가 제격입니다. 남한의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북한에 수력발전소가 유용하다는 점을 배웁니다. 그러나 치수는 댐 건설만으로는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나라에 나무가 많아야 합니다. 우기에 쏟아진 비를 나무들이 뿌리에 담았다가 서서히 내보내야 수량이 조절되는 법입니다.

과거엔 북한에 나무가 많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한반도 북쪽은 산이 많고 남쪽은 평야가 많다고 가르쳤습니다. 남한뿐 아니라 북한의 학생들도 그렇게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젠 북한의 산림면적이 남한보다도 적습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가 최근 발표한 ‘2010 국가산림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산림면적은 약 567만 ha로 남한의 약 622만ha보다 55만ha 정도 적습니다. 북한의 산림면적은 1990년에 820만ha가 넘었으니 20년간 약 30%나 준 것입니다.

이처럼 산림면적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은 청취자 여러분도 잘 아디시피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산림을 밭으로 일구고 땔감을 구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나무를 벤 때문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비가 많이 오면 그 비가 곧바로 민가와 농토를 덮치고 맙니다. 먹고 살기 위해 고육책으로 나무를 마구 자른 것이 먹고살기 더 어려운 상황을 빚은 거지요. 이처럼 북한정권의 구시대적 정책과 무능이 주민들에 고통만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기상기구가 걱정스러운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올여름 장마철 북한에 작년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입니다. 8월에 전국적으로 집중호우가 내리고 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에는 강우량이 작년보다 20%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홍수대비가 허술한 시골에서는 또 한차례 큰물피해가 닥칠 수 있습니다.

반면 도시 주민들은 홍수 대신 다른 물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물이 넘쳐날 것을 염려하는 대신 물이 부족해서 전전긍긍합니다. 영국의 기업자문회사인 메이플크로프트는 최근 발표한 ‘물 부족 지수’에서 북한은 농업용수 비율이 높아 도시주민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평양, 함흥, 청진, 흥남 등을 꼽았습니다.

설상가상 도시의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수도관이 낡은데다 수압도 낮아 수돗물이 높이 올라오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물을 안전하게 실어나를 기반시설이 미비하다 보니 고층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물통을 들고 10층이 넘는 아파트를 걸어서 오르내려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막지역 주민들이 몇 킬로미터를 걸어 물을 긷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기부족으로 엘리베이터마저 작동하지 않으니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어린이들도 이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물이 주민들의 삶을 해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이롭게 하도록 하는 치수정책은 지금 북한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과거엔 치수에 실패하면 왕의 자리가 위태로웠습니다. 홍수와 가뭄이 닥쳐 살 수가 없으면 민란이 나고 백성과 마찬가지로 임금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지금 북한주민들은 치수 실패로 만성적인 홍수와 생활용수 부족 현상을 함께 감내하고 있습니다. 과연 김정일 정권이 치수정책의 중요성을 아는지, 아니면 ‘치수’라는 말의 뜻이라도 아는지 의문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