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 보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공포정치의 악순환'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요즘 북한 내부와 외부 모두 부산합니다. 북한 고위층 10여 명의 잇단 망명 소식으로 북한 정권은 화들짝 놀랐는지 집안 단속에 나섰습니다. 중국에 나가 있는 무역일꾼들을 줄줄이 소환 조치하는 등 고강도의 ‘외양간 고치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외화벌이 일꾼들이 ‘망명 위험군’에 속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망명자에 대한 자세한 경위를 들으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고위층의 망명에 대한 정확한 정보 취득과 함께 의미 파악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망명자들은 권력 있고 돈도 많아 북한 주민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대체 무슨 연유로 망명의 길을 택했을까요? 전문가들은 망명의 동인을 ‘김정은의 공포정치’에서 찾습니다. 현 정권 하에선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한 망명자가 남한정부에 “많은 간부가 숙청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한 증언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북한 권력 2인자이며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해 간부들을 사시나무 떨 듯하게 했습니다. 김정은의 최측근인 최룡해 비서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보도를 접하면 북한 간부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겁니다. 간부들 사이에 ‘보신주의’가 어느 때보다 팽배할 것이란 진단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책임자 자리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본보기로 숙청을 당하니 그렇습니다. 전력난으로 생산실적이 떨어진 자라공장을 방문한 김정은이 “위대한 장군님의 업적을 말아먹고 있다”며 대노한 뒤 자라공장 지배인이 총살됐다고 합니다. 자라공장이 전력을 생산하는 곳이 아닌데, 전력이 부족한 책임을 지고 죽어나갔습니다.
이러니 책임을 지는 자리를 좋아하겠습니까? 간부들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꿰차고 있는 당 조직지도부의 조연준 제1부부장도 김정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가 거부됐다고 합니다. 간부 숙청 근거 자료를 제공해온 조직지도부의 책임자이지만 나중에 토사구팽이란 후환이 두려워 그랬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책임자는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외화벌이 일꾼들은 매달 상납액을 채우지 못하면 호된 벌을 받으니 압박감에 밤잠을 설치게 되고 급기야 망명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이 순안공항 건설 과정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는 남한 당국의 확인도 이른바 실적에 목맨 책임자들의 망명 유혹을 이해하게 합니다.
김정일 시대엔 황장엽 비서의 망명에서처럼 그런대로 고상한 이념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의 망명은,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대로 김정은의 폭압정치가 촉발한다는 겁니다. 김일성 김정일 정권하에서 최고지도자와 고위층은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란 인식이 강했지만 이런 연대의식이 김정은 공포정치로 인해 변할지 주시해야 할 것이라는 장용석 서울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분석도 주목할 만합니다.
경륜이 부족한 김정은이 망명사태에 어찌 대처할까요? 이에 발끈하고 저지하기 위해 또 다른 공포정치를 펼까요, 아니면 따뜻하고 어진 지도자로 변신할까요? 또한 망명사태가 북한정권 불안정으로 이어질까요? 미국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은 이번 망명사건이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란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김정은의 공포통치에 주목할만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는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김정은이 망명자가 생기지 않도록 민주적인 지도자로 거듭날 것이란 전망은 찾기 힘듭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