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리영호 해임’ 일곱 가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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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리영호 해임 일곱 가지 설'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김정은 시대의 2인자급으로 인식돼 온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 동지를 신병관계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짤막하게만 발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리영호 해임의 배경을 바로 집어내려 지식, 경험, 통찰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북한내부의 불확실성이 동북아시아 안정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전문가들은 때론 전혀 다른, 때론 비슷한 ‘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럴 듯하지만 확인되지 않는, 확인할 수 없는 ‘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경제개혁 반발설입니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개혁정책을 펴나가려는데, 리영호가 군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목을 잡았다는 겁니다. 이 얘기가 김정은의 귀에 들어가 경질됐다는 주장입니다.

둘째, 개인 권력 암투설입니다.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급부상한 리영호를 견제하려는 경쟁자들이 연대해 리영호를 낙마시켰다는 겁니다. 특히 이 연대의 중심에는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중심에 있다고 합니다.

셋째, 군부 힘 빼기설입니다. 단순히 경쟁자들 간 권력암투가 아니라 당과 군의 조직 간 싸움에서 군이 패해 리영호가 희생됐다는 설입니다. 당 정치국 명의로 리영호 해임을 발표해 군에 대한 당의 확고부동한 통제를 입증했다는 겁니다. 군령권을 가진 리영호의 제거를 북한 체제에서 신줏단지 모시 듯 다뤄 온 ‘선군정치’의 종말로 보는 견해입니다. 김정은이 리영호 제거 후 원수 직위에 오른 것도 군을 완전히 통제하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넷째, 낙마 예견설입니다. 2010년 3차 당 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은이 군대의 확고한 지지를 얻기 위해 군 출신 ‘리영호’를 띄웠고, 2012년 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군부를 누르기 위해 민간 출신 최룡해를 띄우면서 리영호를 끌어내렸다는 겁니다. 계산된 수순이라는 겁니다.

다섯째, 지도자 기만설입니다. 올해 양력설에 김정은이 군부대를 시찰했을 때 리영호가 영양실조 군인들을 사전에 격리 조치한 것이 발각돼 김정은에게서 질책을 받았듯이, 지도자를 속인 것이 화근이 됐다는 주장입니다.

여섯째, 왕권 강화설입니다. 군부를 등에 업은 리영호를 비롯해 가신들의 득세를 우려한 김정은이 가신에 대한 경고차원에서 리영호를 제거했다는 겁니다. “누구든 나대면 죽는다”는 경고를 한 셈이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대외 강경파 제거설입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활로를 찾아보려는 김정은 정권에 반미 선봉에 선 리영호가 큰 걸림돌로 작용해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정권을 다지는 데 중국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한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반대하는 중국의 복심을 헤아려 군부 강경파의 대부 격인 리영호를 ‘제물’로 바쳤다는 겁니다.

이처럼 리영호 해임과 관련해 이런저런 설이 있지만, 정작 북한당국이 리영호 해임이유로 공표한 ‘신병관계’에 수긍하는 전문가는 없습니다. 리영호는 해임 약 1주일 전 김일성 주석 18주기를 맞아 김정은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습니다. 물론 병색은 전혀 없었습니다.

김정일 장례식 운구차를 호위한 7인방 가운데 우동측 전 국가보위부 제1부부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그리고 리영호 총참모장 등 3명이 밀려 났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앞으로 누가 어떻게 권력에서 멀어질지 모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2010년 9월 북한 정권 실세로 떠올랐다가 2년이 채 안 돼 ‘죄인’ 취급받으며 안개처럼 사라진 리영호. 그의 정치적 명멸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는 숱한 설들. 북한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