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물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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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물장난’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어릴 적 무더위를 피하려 친구들과 강에 놀러 간 적이 있으실 겁니다. 신 나는 물놀이에 가느라 집을 나설 때 어머니께서 “물장난 심하게 하지 말고 몸조심해라” 하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 물장난이 심하면 종종 안전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어머니의 당부는 물을 조심스레 다루지 않으면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충고였습니다.

북한정권이 최근 홍수철을 맞아 ‘물장난’을 심하게 쳐 세상의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엄연히 벌어진 사실을 과장해도 빈축을 사게 마련인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사실로 둔갑시켜 세상에 알렸으니 말입니다. 북한이 대동강 물이 넘쳐 수해가 심하다는 거짓 정보를 사진조작으로 미국의 AP통신사에 전달했고 AP통신이 이 사진을 전 세계 언론에 전파했으나 뒤늦게 조작된 사실을 확인하고 황급히 거둬들이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미국의 언론사론 처음으로 야심 차게 북한과 협약을 맺고 평양에 지국을 연 AP통신은 ‘특종 욕심’에 눈이 가려 망신을 당했고, 국제사회는 잠시나마 조작된 사진에 속아 “북한 대동강 변 주민들 딱하게 됐네” 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번 일로 북한정권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통념을 재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정권이 세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담하게 사진을 조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양합니다. 첫 번째 분석은 북한이 수해상황을 꾸며 국제사회로부터 식량지원을 조속히 받아내려는 속셈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성적인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은 설상가상 김정일 정권의 무모한 핵개발과 잇단 무력도발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의 대북지원도 애초 계획했던 규모의 10%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김정일 정권의 잘못된 정책으로 주민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만일 북한 정권이 허기진 주민이 안쓰러워 식량을 구하려고 궁여지책으로 사진을 조작했다면, 죄는 미워도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이해됩니다.

두 번째 분석은, 2012년 강성대국을 앞두고 주민에게 나눠줄 식량을 미리 챙기려는 작전이라는 겁니다. 내년이 돼봐야 강성대국은커녕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강성대국의 구호를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에 사용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는 민심을 다독일 식량이 필요하겠지요. 이 분석대로라면 독재 권력세습을 위해 식량지원을 유도한 것이지만, 배를 곯는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식량지원을 받아 군대에 전용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입니다. “군대를 먹여 살릴 쌀을 주시오” 하면 과연 누가 주겠습니까? 그러니 궁핍한 주민을 앞에 등장시켜 동정을 산 뒤 지원받은 식량을 군대 곳간에 쌓아둔다는 것입니다. 정권의 주춧돌인 군대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우선 군인에게 식량을 배급해야 하는 북한정권으로선 눈 한 번 질끈 감고 사진조작을 용인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지원한 식량을 엉뚱한 곳으로 빼돌릴 계획이었다면 국제사회를 속이는 것이고, 혜택도 받지 못하면서 수혜대상으로 이용당한 순진한 일반 주민을 우롱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조작한 게 식량지원과 무관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국제재보험사에 들어놓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보통 보험금의 단위가 수천만 달러에 달하고 외화를 바로 거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정권엔 매력적입니다. 과거 북한정권이 사건을 조작해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적이 있어 이번에도 그쪽으로 머리를 썼을 것이란 지적입니다. 그런데 보험금을 타내면 상당 부분이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자금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은 이 돈으로 독재정권을 세습해 갈 것입니다.

이상 네 가지 중 어느 하나가 사진조작의 진짜 이유일 수 있고, 두 개 이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진위야 어떻든 북한정권이 ‘물장난’을 이처럼 심하게 한 것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홍수는 주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문제인 까닭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