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는 전쟁의 ‘전승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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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승자 없는 전쟁의 전승절'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축구 결승전 90분 경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갈립니다. 이긴 팀은 승리에 취해 온 세상을 다 가진 양 기뻐하지만, 패자는 땅을 치며 통곡하듯 괴로워합니다. 승리한 나라는 승전보를 세계만방에 알리며 축제를 열지만, 패한 나라는 한동안 풀이 죽어 침울한 시간을 보냅니다.

이처럼 승패의 명암은 뚜렷합니다. 승리 못 한 자는 절대로 승리했다고 자축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치밀한 작전과 거듭된 훈련으로 장담했던 승리를 쟁취하지 못한 충격이 심해 정신을 온전히 가누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는 소릴 들으려면 이런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7월 27일은 한국전쟁이 일단 정지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민족의 비극인 전쟁이 중지된 날입니다. 전쟁이 완전히 종식된 ‘평화의 날’이 아니라 일단 중단된 ‘휴전일’이지만, 그래도 총탄과 포탄이 오가는 상황은 멎었으니 다행스런 날로 기념됩니다. 남한은 이를 ‘정전기념일’이라고 부릅니다. 객관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전승절’이라고 합니다. 중국마저 ‘조선전쟁 정전일’이라며 중립적인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데, 북한은 승리를 강조하는 ‘전승절’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날로 간주하고, 매년 이날이 다가오기 얼마 전부터 ‘전쟁 승리’를 대대적으로 자축합니다.

북한은 정전 60주년인 올해 ‘전승 60돐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라고 적힌 새 선전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겼다’라는 주장을 두 번이나 강조한 포스터입니다. 하지만, 남한은 지난 60년 동안 단 한 번도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남침에 허둥대다 한반도 끝자락까지 밀려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했고 유엔군의 도움으로 빼앗긴 땅을 되찾았으니 선방했다고 볼 수 있지만, 조금도 티를 내지 않습니다.

실상 한국전의 승자는 없습니다. 북한이 승리한 것도 아니고 남한이 승리한 것도 아닙니다. 전쟁은 한민족의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참화는 세상이 다 압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중단될 때까지,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한반도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사망, 부상, 실종자는 남한 측이 190만여 명, 북한 측은 332만여 명입니다. 여기에 유엔군과 중공군 등을 합치면 희생자 수는 더 늘어납니다. 재산 피해는 계산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국토는 처참하게 유린당했습니다. 그러니 ‘전승절’이란 표현은 언어도단이며, ‘전쟁 승리’ 운운하는 것은 남북한을 떠나 반민족적인 태도입니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이 합세해 북한을 침공하자 이를 격퇴했다고 주장합니다. 허황한 거짓입니다. 파죽지세로 남하한 북한군은 서울에 손쉽게 진주했고, 북한의 기습공격에 당황한 남한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피난길에 오른 수많은 주민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6월 28일 한강대교를 폭파해야 했습니다. 남한을 침략할 사전 계획 없이 어떻게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주민 가운데, “우리가 침략당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흘 만에 서울까지 진격했을까?”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칫 화를 당할까 두려워 더 이상 발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북한은 한국전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을 대거 당의 요직에 앉혔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남한과 미군의 침략을 격퇴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거짓 선전과 세뇌를 반복해왔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주민은 정부 당국의 의도대로 그들이 말하는 ‘전승절’ 자축행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선전 선동과 조직적인 세뇌의 결과입니다.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막는 반인륜적인 공작정치의 폐해입니다.

올해 ‘전승절’ 60주년을 맞아 북한정권이 유난히 들떴습니다. 이날을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해서겠지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먼저 ‘전승 60돌 기념훈장’을 수여했고, 이어 전쟁 공로자 4만 7천여 명에게 ‘전승 60돌 기념훈장’을 수여했다고 공표했습니다. 민심을 추스르고 전쟁에서 이겼다는 그릇된 생각을 쉼 없이 주입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정권유지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을 고달프게 하고, 국제사회를 골치 아프게 하는 정권을 유지하는 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