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앵무새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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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앵무새 수상소감'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앵무새는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처음엔 희한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지만, 나중엔 그만 듣고 싶어집니다. 앵무새의 따라 하기 재주도 반복될수록 우스꽝스럽습니다.

지금 영국 런던에서 세계인의 체육 축전인 하계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북한 선수들은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선전하고 있습니다. 8월 1일 현재 금메달을 네 개 땄습니다. 예상을 뒤엎은 쾌거입니다. 그래서 북한 매체도 이례적으로 런던에서의 낭보를 신속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북한 선수들이 평소에 땀 흘려 갈고 닦은 실력을 국제무대에서 맘껏 발휘해 영예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엔 같은 민족으로서 환호가 터져나옵니다. 하지만, 금메달을 딴 선수의 수상소감을 들으면 꽉 막힌 한반도 북녘땅의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북한 유도의 희망’ 안금애 선수는 결승에서 쿠바선수를 내리꽂아 북한에 첫 금메달을 선사하면서 “김정은 동지에게 금메달로 기쁨을 드렸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기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한 번 누릴까 말까 한 영광을 거리낌 없이 김정은에게 돌렸습니다.

역도 56kg급에 출전한 엄연철 선수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면서 북한에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엄 선수는 “오늘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신 위대한 김정은 장군님께 감사를 드린다, 장군님께서 올림픽 새 기록을 세우도록 이끌어주시었다”며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62kg급에 나선 ‘북한 역도의 간판’ 김은국 선수는 세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김은국은 경기가 끝나고 금메달이 확정되자, “빛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힘과 용기를 안겨줘 1등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선수 56명이 모두 메달을 땄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앵무새처럼 “위대하신 김정은 지도자 동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승리했다”는 내용을 수상소감으로 말했을 겁니다.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선수들은 수상소감을 말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용기를 불어넣어 준 친구들이 고맙다” “잘 지도해주신 감독님께 감사한다” “끝까지 성원해주신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 누구도 수상소감에 자국의 지도자를 거명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이명박 대통령님 덕분에 1등을 했다”고 말하는 한국선수는 없습니다. 미국선수가 만일 “빛나는 지도자 오바마 대통령님의 은혜를 입어 메달을 땄다”고 한다면,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지?” 하며 어리둥절해 할 겁니다.

북한 선수들이 “김정은” 운운하는 것은 왕조 시대에 백성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업적을 왕에게 돌리면서, “폐하, 성은이 망극하여 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와 백성이 왕의 소유물로 치부되던 왕조 시대와 마찬가지로 북한과 북한주민이 김정은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북한선수들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의 뿌리는 북한 선수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교육한 북한정권에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으니 수상소감이 지도자 찬양일색인 것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만일 제가 북한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땄어도 같은 소감을 말했을 겁니다. 한 개인이 잘못된 체제와 폐쇄된 환경에 의해 얼마나 완벽하게 세뇌되고 조종될 수 있는지 북한선수들의 수상소감이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우물 밖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런던의 탈북자들은 북한의 동포들을 안쓰러워하며 목청 높여 북한선수들을 응원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 선수들의 ‘앵무새 소감’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같은 민족이란 이유로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힘차게 박수를 보냅니다.

탈북자들과 남한사람들의 북한응원에는 북한이 하루속히 우물 밖으로 나오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들의 응원에는 북한정권이 더는 주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지 말고 입을 막지 말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런던올림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북한선수들의 숨겨진 기량에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북한선수들의 판에 박은 ‘앵무새 수상소감’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