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성분에 도전하는 성형'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한 탈북 여성이 얼마 전 제게 가정사를 들려주었습니다. 여성의 부모님이 결혼을 앞두고 이른바 성분 문제로 고민하던 이야기입니다.
이 여성의 아버지는 중국 심양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북한에 와서 북한국적을 취득해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북한인입니다. 두 분은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고 백년가약을 맺기로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북한 군대에서 제대하고 뚜렷한 입지를 굳히지 않은 상황인 데 반해 어머니는 고등중학교 수학선생이었습니다.
아버지 집에서는 환영했지만, 어머니 집에서는 이 결혼에 반대했습니다. 아버지가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게 결정적인 반대 이유였습니다. 어머니 집은 황해도에서 그런대로 이름이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중상층 정도는 됐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조선족인 아버지와 결혼하면 성분을 따지는 북한 사회에서 차별을 받게 됩니다. 어머니는 물론 앞으로 태어날 자녀도 출세길이 막힙니다.
어머니는 수학선생을 하다가 입당해 당성을 쌓으면 교장도 될 수 있는데 외국에서 출생한 사람과 결혼하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자녀도 나중에 대학에 가거나 입당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탈북여성의 부모님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 여성은 탈북 후 북한의 가족 소식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탈북여성의 가정사는 북한에서 성분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말해줍니다. 미국의 기업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성분-북한의 사회계급’이란 보고서를 보면, 북한은 주민을 태어나면서부터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등 3계층으로 나누어 의식주 배급, 의료, 진학, 직장, 승진 등에서 차별합니다. 2천400만 인구 중 약 4분의 1 정도만이 핵심계층으로 분류되고, 나머지 4분의 3은 각종 특혜 대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됩니다. 특히 적대계층은 평생 낙인 찍힌 삶을 살게 됩니다.
성분이 안 좋으면 아무리 빼어난 재주를 가졌어도 사회적으로 뻗어나가지 못합니다.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남한에서도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길이 살짝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작은 길’이 드러났습니다.
북한의 외화벌이 기관 등에서 미모가 특출 난 여성 확보 경쟁에 나섰습니다. 성분을 따지지 않고 외모만 뛰어나면 뽑아 간다고 합니다. 토대나 과거에 상관없이 외모가 수려하면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학교에 와 데려간다는 겁니다. 예쁜 여성들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난도 있지만, 여학생들도 외화벌이 기관에 뽑혀가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학생 본인뿐 아니라 부모도 딸의 출세를 위해 성형수술에 앞장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성형은 남한에서도 논란거리가 된 지 오랩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뜯어고치려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지만, 성형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회적 인식도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형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성형은 남한에서보다 더 부정적으로 인식될 겁니다. 개인의 자유의지 표출이 강해진 남한에서도 예전에는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남한보다 더 보수적인 북한에서 얼굴을 인위적으로 고치는 성형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그저 지금보다 예쁜 얼굴을 갖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북한 여성의 성형에는 외모에 변화를 준다는 점 외에 또 다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얼굴 성형으로 예뻐져, 평소 엄두도 내지 못한 자리에 올라가려 한다는 점입니다. 열심히 실력을 연마해서는 성분의 벽을 넘지 못하는 사회이니 성형하는 사람을 질타할 수도 없습니다.
성형으로 변한 외모는 고리타분한 성분의 족쇄를 풀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도 지닙니다. 수십 년간 자리 잡아 온 성분제도라는 벽에 균열이 생기고, 종국에는 성분의 벽이 무너지고 재능을 맘껏 펼치려는 북한 주민의 욕구가 분출될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 바람’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모양새로 다가옵니다. 꽉 막힌 북한 사회에도 이런 바람이 불었으면 합니다.
다소 희망적인 것은, 애초에 북한여성들이 얼굴을 고쳐 신분상승을 꾀하려 한 게 아니라, 외화벌이 기관 등 북한 당국이 절박한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답답한 성분제도에 스스로 망치질을 했다는 점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