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반가운 ‘소득세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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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반가운 소득세 70%'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이 시행키로 한 ‘새 경제관리체계’에 농민들과 직결되는 항목이 있습니다. 전체 수확량에서 70%는 당국이 가져가고 나머지 30%는 농민의 몫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뙤약볕에서 죽도록 고생하는 농민에겐 3할만 돌아가고, 무게만 잡고 왔다 갔다 하는 당국은 7할을 거둬간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농사는 거의 농민들이 짓습니다. 당국에서는 비료와 같이양을 농사에 필요한 재료를 지원해 주어야 하지만, 실제 농민은 충분한 비료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국이 수확량의 7할을 가져가는 방식은 부당하다 못해 강탈의 수준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새 경제관리체계에 따르면, 북한 농민에겐 70%의 소득세가 부과되는 셈이지요.

전 세계 각국의 소득세율을 기록한 ‘세계 세율 2010/2011’(World Tax Rates 2010/2011)을 보면, 소득세가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입니다. 최고세율이 51%가 넘습니다. 돈을 벌면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냅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덴마크의 경우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내는 세율이 51%라는 겁니다. 그래도 북한 농민이 내야 하는 70%보단 한참 작습니다. 세계 각국의 세율은 소득 정도에 따라 차등 적용됩니다. 중간 소득자의 세율은 낮아집니다.

미국의 서민들은 일 년 동안 번 돈에서 20% 정도를 세금으로 냅니다. 한국은 이보다 조금 낮습니다. 그러니 북한 농민은 이들보다 약 3배나 많은 세금을 당국에 바치는 겁니다.

북한이 혈맹처럼 여기는 중국의 세율은 5-45%입니다. 중간 소득자는 소득의 25%정도를 세금으로 냅니다. 북한의 우방 쿠바를 보아도 북한 농민의 부담은 비교되지 않습니다. 쿠바의 세율은 25%에서 50% 사이를 움직입니다. 중간을 잡더라도 북한 세금의 절반 수준입니다. 비슷한 사회주의 체제이고 어깨동무하는 관계인데 세금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북한은 오랜 세월 독재 체제를 유지해 온 버마와 특별한 관계입니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이행하는 와중에도 북한과 버마의 무기거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북한이 이 정도로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버마도 평균세율은 15%정도로 북한과는 상대되지 않습니다. 최근 북한이 부쩍 가깝게 지내려고 하는 베트남 즉 윁남도 평균 세율이 20% 안팎입니다.

물론 선진국들의 세율이 낮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세금을 거둬 국민의 복지를 위해 사용합니다. 세금을 내면 그 세금이 다시 국민 개개인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되돌아갑니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유럽 여러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도로를 놓고, 다리를 건설하고, 재난을 당했을 때 다른 나라에 손을 벌리기 전에 재해복구에 할당합니다. 이렇듯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세금을 씁니다.

북한농민이 내는 70%의 세금도 그렇게 쓰일까요? 혹 집권세력의 금고로 곧장 들어가지 않을까요? 농사가 안 돼 배를 곯을 때 당국이 세금으로 식량을 사들여 배불리 먹여주나요? 북한 주민의 민생이 열악한 점을 고려하면 세금이 선용 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새 경제관리체계’에 따라 북한 농민에 부과된 소득세 70%는 아무리 생각해도 과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러한 조처가 내려지면 아마 폭동이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도 북한 농민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도 이 새로운 체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자초지종을 알고 보면 수긍이 갑니다. 북한당국은 지금껏 풍년이든 흉년이든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양을 거둬갔습니다. 농사가 잘 안 된 해에 당국이 정해진 데로 가져가면 농민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끼니를 때우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고 심하면 죽고 맙니다. 그러니 흉년에도 수확량의 30%는 보장해 준다는 말에 농민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북한농민은 ‘세금 70%’의 의미를 계산하지 못합니다. 오랜 세월 배급제에 익숙해져 있는데다 당국의 횡포에 면역돼 있어 스스로 노력으로 거둔 결실이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얼마 전 북한의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 수확이 잘 안 됐는데도 당국에서 평소처럼 곡물을 거둬가는 바람에 상당수 주민이 굶어 죽었다는 얘기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북한 농민뿐 아니라 국제사회는 지금 ‘세금 70%’가 아니라 ‘농민 몫 30%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세금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지만, 제대로 이행된다면 그나마 농민들에겐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농민 몫이 조금씩 늘어나면 농민의 삶이 점차 나아질 겁니다. 농민 몫이 70%가 되고 당국이 30%만 거둬가는 날을 그려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