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천연색 노동신문'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남한에서 신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지면이 모두 흑백이었습니다. 간헐적으로 채색 인쇄가 얼굴을 들이밀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신문지면이 본격적으로 천연색이 됐습니다. 단순히 ‘읽는 신문’에서 눈을 당기는 ‘보는 신문’으로 전환했습니다.
기사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답답한 흑백 지면을 다채로운 천연색 지면으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독자에 대한 신선한 서비스 제공입니다. 사회 발전으로 독자들의 욕구는 끊임없이 변하는데, 고리타분하게 흑백 두 가지 색으로만 지면을 제작할 순 없었던 겁니다.
흑백신문의 전통을 이어 온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도 요즘 화려해졌습니다. 천연색 사진을 큼지막하게 게재했습니다. 7월 말부터 8월 초 노동신문을 들여다보면, 1면에 천연색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습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의 현지 활동사진이 1-2면에 여러 장 개재됐습니다.
김정은의 사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란 테헤란을 방문하는 사진과 귀국하는 사진도 천연색으로 선보였습니다. 북한에서 ‘전승절’로 불리는 정전기념일과 관련해서도 천연색 행사 사진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남한 언론은 노동신문이 2012년 한해 천연색 사진을 올린 날 수가 11일에 그친 것에 비하면 최근의 현상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노동신문의 변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노동신문은 약 150만 부가 발행된다고 합니다. 부수를 더 늘리려고 천연색을 썼을까요? 노동신문은 당 선전선동부의 편집을 거쳐 지방 당·인민위원회 비서들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배포됩니다. 독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국 독자의 관심을 끌기엔 내용이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입니다. 거의 매일 김정은의 행보를 찬양 일색으로 다루는 노동신문이 외국 독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동신문의 변신에는 독자 확장보다는 선전선동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한 것 같습니다. 여기엔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습니다. 북한도 지면을 천연색으로 꾸민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지면을 천연색으로 하려면 아무래도 비용이 더 드는데 이렇게 한 것은 경제적 상황이 나아졌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정부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든, 노동신문에 천연색 사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겁니다. 흑백 두 가지 색만 보고 자란 사람들은 실제 사회현상을 볼 때도 이분법을 적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천연색을 보고 자란 사람은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지는 게 더 좋다는 점을 체득합니다. 천연색 신문은 서로 다른 생각과 표현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게 해 다양성을 인정하도록 돕습니다.
남한에서도 수십 년 전에는 ‘흑백 문화’가 두드러졌었습니다. 거리를 다니는 차량도 거의 검은색이었습니다. 빨간색이나 파란색, 노란색 차를 타면 채신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엔 그랬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남한사회는 정치 경제 체제는 물론 색상에서도 개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보고 느끼는 색의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은 애국자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반자로 여기는 인식은 ‘흑백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어느 나라든 정권에 대한 주민 개개인의 지지 정도는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열성적인 지지자가 있지만 극한의 반대파도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중간 계층이 있습니다. 중립적이면서도 건설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는 다수가 사회를 바로 이끌어 가는 이 중간 계층입니다.
흑백영화만 볼 때는 그게 영화 전부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다 천연색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천연색 영화를 계속 보면 이젠 흑백영화는 시시해집니다. 특별한 예술작품인 흑백영화가 아니면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흑백 문화’가 풍미한 획일적 사회를 용인하는 정도도 점점 줄어들겠지요.
노동신문이 천연색 사진을 크게, 자주 쓰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정부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 주민 사이에 다양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조금씩 뿌리를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엔 북한 정권도 독재 체제 유지에 활용해 온 ‘애국자-배반자’의 단순논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에 부닥치게 되겠지요.
물론, 천연색 지면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지면 색깔만이 아니라 내용도 다채로워야 진정한 ‘천연색 신문’입니다. 천연색 지면과 천연색 내용의 노동신문. 보고 싶어지는 신문, 기다려지는 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