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구’ 안전장치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1차 회의가 열린 지난 2일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1차 회의가 열린 지난 2일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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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특구 안전장치'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최근 열흘간 휴가를 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를 다녀왔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북부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친구를 방문했습니다.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구경을 나섰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신학박사로 미국교회에서 목회하는 친구는 유난히 한반도 정치 상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당시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한 남북 간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던 터라, 남북경제 교류가 단연 으뜸 논제가 됐습니다.

친구는 남북한이 협력해 북한 전역에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을 많이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야 북한 경제가 살아나고, 북한 주민의 생활이 나아지면 남북관계도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시작해 정치적인 영역까지 점차 풀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개성공단과 같은 공업단지가 여기저기 생겨 경제가 활성화하고 주민들이 어깨 활짝 펴고 살면, 북한이 기회 있을 때마다 사용하는 ‘정치적 군사적 도박’의 횟수가 줄어들고 한반도 긴장이 완화될 것이란 바람이었습니다. 저도 친구의 구상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한가지 우려를 표했습니다. 지역마다 공단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공단에 남북한만 참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해도 공단 운영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는 도루묵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 원리에 기초해 움직여야 할 공단이 권력과 정치 싸움에 ‘등 터지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최근 개성공단 가동중단으로 입증되지 않았습니까?

개성공단 가동중단으로 북한 근로자들의 피해가 더 컸는지, 남한 기업의 피해가 더 컸는지를 따지기 이전에 남북 모두 피해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북한 전역에 남북합작 공단들을 세웠다가 가동이 중단될 땐 그 피해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말미암은 피해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클 겁니다.

북한 전역에 공단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은 공단의 안정적인 가동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사실 공단을 지속적으로 가동하는 것이 공단 설치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남한이 공단에 쏟아 부은 인적 물적 자원을 볼모로 북한이 또다시 정치적 인질극을 벌일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구축하는 일이 긴요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를 지나면서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누던 때와 비슷한 시점에, 마침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이 북한이 전국의 도마다 관광 또는 경제특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도마다 특구를 조성하라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이 지시를 받은 각 도당 책임자들은 특구 조성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판입니다. 잘만 하면 중앙당 진출에 청신호가 켜지지만, 만일 특구 건설이 지지부진하면 문책을 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지요.

김정은의 특구 개발 지시는 경제 살리기의 하나로 해석됩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치논리의 입김이 센 북한인지라 경제만 홀로 성장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왕조시대와 같은 북한의 정치체제입니다. 대를 이어 온 권력체계는 극도의 경직성으로 유연한 경제 발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보장은커녕 시도 때도 없이 발목을 잡기 일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치놀음에 공단운영이 파행을 겪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운전하랴 논쟁하랴 바쁜 샌프란시스코의 친구에게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여국이 모두 이들 특구 조성에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겁니다. 물적 인적 자원을 투입해 특구 조성에 동참하자는 구상입니다. 북한 측이, 너무 복잡하다면서 난색을 보이면 남북한의 주도에 미국만이라도 끼워주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기술과 자본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지요. 중국은 이미 북한에 다양한 형태로 발을 들여놓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조성된 특구는 북한의 정치행태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북한정권도 함부로 특구를 폐쇄하겠다고 협박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특구가 정착하고 경제가 발전해 주민의 생활이 개선되면 보다 폭넓은 개방 개혁에 대한 갈망이 주민들 사이에 뭉게구름처럼 커질 겁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