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인기 없는 나라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서울 풍문여고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나오고 있다.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서울 풍문여고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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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공무원이 인기 없는 나라'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655대 1. 축구경기 결과가 절대 아닙니다. 농구경기에서도 이런 득점 차이는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수는 655명과 1명입니다. 655명과 한 명이 편을 갈라 대결하는 게 아니라, 655명 가운데 한 명이 뽑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서울시의 최근 자료를 보면, 전산 9급 공무원 2명을 채용하겠다는 공고에 1천311명이 지원했습니다. 이래서 말단 공무원 채용에 655대 1의 경쟁률이 나오게 됐습니다. 또 서울시 일반행정 7급 모집은 4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지원 열풍은 한국뿐이 아닙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대단합니다. 일본의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직업 가운데 장래 배우자의 직업으로 공무원을 으뜸으로 꼽은 비율이 20%나 됐습니다. 직업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20%를 득표한 것은 적지 않은 일본 미혼여성이 공무원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중국 연변에서도 공무원 지원 열기는 뜨겁습니다. 길림성(지린성) 공무원 채용시험에 연변에서만 5천여 명이 응시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미국에서도 공무원은 인기 직종에 속합니다. 특히 한인 등 이민자들에겐 공무원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러 나라에서 공무원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뭐니뭐니해도 안정성입니다. 불황이 닥쳐 온 나라가 뒤숭숭해도,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공무원은 어떻습니까? 다들 먹고 살기 어렵다는데, 상대적으로 안정적일까요? 당연히 그런 공무원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북한에선 ‘공무원은 안정적’이란 등식을 적용하기 곤란합니다. 일부 고위층과 뇌물을 받기 쉬운 자리에 있지 않으면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니까요. 북한에선 공무원이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는 얘깁니다.

내로라하는 간부급 공무원들은 권력과 부를 함께 거머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뇌물을 챙길만한 직책에 있지 않고서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국이 주는 공식 봉급은 쥐꼬리만 하니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귀한 몸’이 망가져도 개의치 않고 장마당에 나가 돈벌이에 몰두합니다. 배를 곯는 것보다 실속 없는 체면을 내동댕이치는 게 훨씬 낫기에 그렇게 합니다.

일주일에 2-3일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생활전선으로 뛰어가는 공무원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잠깐 직장에 들러 상사의 눈도장을 찍는 ‘약식 공직 수행’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직장에서도 모른 척하고 슬쩍 넘어가 준답니다. 평양 공무원 이야기입니다. 북한의 핵심 지역에서 이런 기강해이 현상이 빚어지고 있으니 경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지방 공직사회의 현주소가 눈에 선합니다.

공직 기강은 물론이고 공무원 본연의 임무도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게 뻔합니다. 군대에서 탈영병이나 지휘관의 명령을 어긴 자를 엄히 다스리는 것은 이들이 군대의 역할 수행에 치명타를 입히는 까닭입니다. 중국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장수 마속을 무척 아꼈으나 그가 명령 불복종으로 전투에 패하자 눈물을 흘리며 목을 벤 것도 기강을 바로 세우려 함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군대가 궤멸할 것을 잘 알았던 것이지요.

군대가 아닌 일반 공직사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이 없는 공무원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의 기강이 핫바지처럼 흐물흐물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상당수 공무원은 공직 수행보다는 돈벌이에 더 눈을 밝히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탓할 수만도 없습니다. 공무원의 최고 매력인 안정성이 북한에서는 바닥을 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권력과 부를 누리는 김정은 측근세력이나 정권의 핵심계층은 이런 걱정 하지 않겠지만, 많은 시간을 주민과 접촉하며 일하는 상당수 공무원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일선 공무원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는 묘수는 없을까요? 간단합니다. 생계를 보장하는 겁니다. 그러면 밖으로 나도는 공무원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겁니다.

이렇게 간단한 처방을 북한정권은 왜 이행하지 않을까요? 공무원이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아도 살만큼 봉급을 줄 수 없어서 일겁니다. 또는 정권이 주민에 대한 봉사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돈도 없지만 애초에 대민 봉사에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체제안정의 근간은 민심이고, 민심을 다독이는 데 공무원의 봉사가 큰 몫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 공무원이 마구 흔들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