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독재자 수난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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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독재자 수난의 해’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2011년은 ‘독재자 수난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찬란해 보이는 권력의 후광에 도취해 영원토록 군림하려던 독재자들이 혹독한 죗값을 치른 한 해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데, 하늘의 뜻과 같은 국민의 뜻을 거스른 반인륜 지도자들의 말로가 어떤지 똑똑히 드러난 해입니다.

1987년 무혈쿠데타로 집권한 후 아프리카의 튀니지를 23년간 지배한 벤 알리 대통령은 경제난이 악화하면서 올해 초 몰아 닥친 정권퇴진 시민운동에 직면했습니다. 알리 대통령은 시민의 저항에 부딪히자 지난 1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튀지니(뛰니지)의 민주화 혁명에 자극 받은 이집트(에짚트) 국민은 30년간 이집트를 지배해 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장기집권을 청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민주화 시위에 겁을 먹은 무바라크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요리조리 위기를 피해 가려고 했으나 성난 민심이 이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지난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권력남용 등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 동안 이집트를 호령하던 무바라크는 이제 준엄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피고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무려 42년간 리비아를 손안에 쥐고 흔들었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현존하는 최장수 독재자였습니다. 카다피는 리비아에 부는 민주화 바람을 무력으로 막으려 했습니다. 반정부시위는 유혈충돌에서 내란으로 이어졌고 희생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카다피는 내전 중 한 손에 확성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는 친위세력에게 결사항전을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어 보였던 카다피는 결국 고향으로 도주해 하수도 구멍에 숨어 있다가 잡혀 “살려달라”는 구걸을 했지만 비참한 최후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독재자의 횡포에 분연히 들고 일어선 민심의 화살은 이제 시리아와 예멘의 집권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민심을 무력으로 짓밟는 독재자의 말로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가까운 역사가 가장 확실한 ‘증인’입니다.

이와 달리, 중국 지도부는 국민의 반정부 반독재 불만을 ‘개방’이란 카드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는 민주화 바람이 언제 어디서 불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은 헌법을 마음대로 바꿔 장기집권을 기도하지 않고 일단 총리로 옮겨 앉은 뒤 헌법이 허용하는 대로 다시 대통령이 되겠다는 고단수를 썼습니다. 민심이 떠나면 권력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몇 남지 않은 독재의 보루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떻습니까? 일단 국방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몇 년 후에 재집권하려는 계획이 있을까요? 주민이 기본적인 경제생활을 꾸려갈 수 있도록 나라의 문호를 활짝 열어젖힐까요? 아들 김정은에게 전권을 이양하려고 꼼수를 쓰는 대신 권력을 분산하고 국제감각이 있는 엘리트를 양성한 뒤 기용해 세계화에 동참할까요?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자국민의 손에 죽어 싸늘한 시신이 된지 이틀 만인 10월 22일 김정일 위원장은 ‘깜짝 쇼’를 보여주었습니다. 권력을 내놓겠다거나, 권력을 분산하겠다거나, 통 큰 개방을 하겠다는 발표를 한 게 아닙니다. 김 위원장은 북한군 제985부대를 예고도 없이 방문했습니다. 이 부대는 김정일 일가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호위사령부입니다. 김 위원장은 부대원들에게 돼지고기를 제대로 공급하라고 지시하고 ‘수령 결사옹위 정신’을 독려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북한주민의 어려움을 헤아려 해결하려 하지 않고 유사시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믿는, 소위 성분 좋은 5만여 호위부대원들만 먼저 챙겼습니다. 김 위원장은 2천400만 북한 주민을 온 힘을 다해 보살펴야 할 동족이 아니라 잠재적인 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