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김정일, 김정은의 조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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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일, 김정은의 조급증’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말을 듣지 않고 불만이 꽉 차 있을 땐 우격다짐으로 머리를 쥐어박거나 성급하게 매를 들 게 아니라 자녀의 생각을 잘 헤아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가야 합니다. 나랏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코앞에 닥친 문제를 풀려고 조급한 대책을 내놓으면 십중팔구 문제가 더 커지고 상황이 꼬이고 맙니다.

북한당국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하는 주민들 때문에 고민해 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에는 탈북을 막기 위한 별다른 장치가 없었습니다. 양국의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경지역에 철조망이 처지고 있습니다. 탈북을 저지하기 위해서 북한과 중국이 손을 맞잡은 것이지요.

탈북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기발한(?) 구상이라고 생각해 철조망을 설치하는가 봅니다. 사실 탈북하는 주민 가운데는 어린이도 있고 약한 여성도 있어 철조망이 탈북 기도를 제어하는 효과는 어느 정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심심하여 놀이공원에 가려고 고향을 떠나는 게 아닙니다. 끼니를 때우는 게 막막하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 없다는 결연한 각오로 탈북하는 것입니다. 그럴진대 과연 철조망으로 이들의 사생결단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북한당국도 이런 점을 알고 있는지, 철조망 설치와 다른 초강수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무기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국경경비대원들이 탈북자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압록강을 건너던 40대 북한 남성이 경비대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인권운동가가 증언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압록강에서 떠내려온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이 여성도 총에 맞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인권단체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탈북자를 사살한 것은 옛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고 이를 넘는 동독인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한 것과 같습니다. 자기 나라를 떠나려는 주민들을 총으로 막으려던 동독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역사책에나 나올 뿐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라를 떠나려는 사람들을 총칼로 저지하는 대신, 왜 주민들이 고향을 등지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과거 동독이 하던 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철조망을 세우고, 탈북자를 사살해도 맘이 놓이지 않았는지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 공관원들까지 통제하고 있습니다. 사전 허가 없이 중국 이외의 제3국을 방문하면 북한으로 재입국할 때 제약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혹 이들이 자유세계의 소식을 갖고 들어와 주민에게 퍼뜨릴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북한정권은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외국 공관원들을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인질쯤으로 여기는가 봅니다. 한술 더 떠 외국 공관원들과 그 가족들이 평양 밖으로 나가면 북한주민들과의 접촉을 차단하려고 감시요원이 눈에 불을 켜고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물가에 내놓았을 때 부모의 심정일까요? 아니면, 원자력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위험인물이 마을 사람들을 오염시킬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일까요?

북한정권은 주민들을 까막눈 상태로 유지하려 별의별 수단을 다 강구하고 있습니다. 전근대적인 체제를 쇄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민의 등에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떠오를 때 일각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서방세계에서 살았으니 북한에도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있었지만 역시 섣부른 기대였나 봅니다.

최근 북한 매체들에는 김정은의 사진과 동영상이 자주 실려 김정은의 위상이 강화됐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김일성 전 주석이 살아 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크게 보도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김정은에 대한 보도행태는 파격적입니다. 그래서 건강이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이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처럼 김정은이 권력 실세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드러난 국경지역 철조망 설치와 탈북자 사살은 김정은 치하에서도 북한은 암울할 수밖에 없음을 앞당겨 보여줍니다. 외국 공관원들의 활동마저 통제하려 드는 북한 정권에 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라고 외친들 과연 메아리가 울리겠습니까?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