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총 쏜 어린이 김정은'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남한에서 사격하기 전에 하는 훈련을 PT 체조라고 합니다. 원래는 체력단련이란 뜻이지만, 하도 힘들어 피(P)가 튀고(T) 알이 배기는 체조로 불립니다. PT 체조를 하는 이유는 몸이 녹초가 돼야 긴장이 풀려 사격할 때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장한 장병도 PT 체조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어린이는 사격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어도 견딜 수 없는 체조입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어린이였을 때 총을 쏘았다고 합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근 노동당출판사가 김정은의 비범성을 부각하는 회상실기도서 ‘선군혁명영도를 이어가시며’ 1권을 발간했다고 전하며, 이 책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어린 시절에 총도 쏘시고…’라는 대목을 소개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을 넘겨줄 아들 김정은에게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훈련 없이 사격을 허용했을까요? 김정은이 어릴 적 총을 쏘았다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북한군이 주로 사용하는 소총은 구 소련의 AK소총을 개량한 ‘88식 자동보총’입니다. 길이는 90센티미터가 조금 안 되고 무게는 3킬로그램 정도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성능과 무게가 개선됐다고 하지만, 어린이로선 들기도 버거운 총입니다. 어린 시절 임꺽정이라면 몰라도, 보통 어린이는 총을 땅에 질질 끌고 다녀야 할 겁니다.
물론 김정은이 참호 속에 고정한 소총으로 사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석연치 않습니다. 소총은 반동이 워낙 세 자칫하면 부상을 당합니다. 그래서 사격을 하기 전에 총 개머리판 끝을 몸의 오른쪽 어깨와 빗장뼈 사이 움푹 들어간 부위에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밀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방아쇠를 잡은 손은 오른쪽 관자놀이에 꽉 붙여야 합니다. 이런 일은 모두 사격과 동시에 느끼는 반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는 개머리판을 밀착시킬 부위가 튼튼하지 않고, 광대뼈도 연약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 자세를 잡더라도 사격 후 반동을 견디지 못합니다.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을 게 뻔합니다. 이처럼 위험한데 김정일이 아들에게 총을 쏘라고 했겠습니까?
김정은이 쏘았다는 총이 혹 권총인지 모르겠습니다. 권총은 소총에 비해 가벼우니 어린이도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총을 드는 것과 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권총을 직접 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권총의 반동도 만만치 않습니다. 과녁을 조준해 쏘더라도 반동의 힘으로 권총을 잡은 손이 순식간에 위로 올라가 10미터 앞에 있는 목표물도 맞히기 어렵습니다.
영화에서 권총을 든 주인공이 달리면서 한 손으로 정확히 적을 맞춰 제압하는 모습은 그저 영화 속 장면일 뿐입니다. 일반 군인도 권총 사격 훈련을 할 때는 두 손으로 총을 잡고 쏩니다. 어린이가 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처럼 위험한 사격을 김정일이 허용했을 리 없고, 만일 김정일의 허락 없이 김정은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했다면 그 사람은 당장 목이 달아났을 겁니다. 그리고 김정은이 어린 시절 고사리 손으로 굳이 총 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김정은이 어릴 적 총을 쏘았다는 주장을 믿으려 해도 도무지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김정은이 어린 시절에 총을 쏘았다는 주장은, 북한정권이 주민들에게 김정은에 대한 환상을 갖도록 조작하려는 데서 나온 것은 아닌지요? 김일성 때도 그랬고, 김정일 때도 그랬듯이 독재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은 아닌지요?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요?
김정은이 어린 시절 진짜 총을 쏘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기야 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물을 잔뜩 담아 노는 고무총이나 플라스틱 총도 있습니다. 혹 어릴 적 김정은이 이 총을 쏘아댄 것은 아닌지요?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