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한류 타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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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한류 타는 북한’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라스베이거스’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이곳은 미국 서부 네바다 주에 있는 공인된 도박도시입니다. 이곳에 즐비한 대형호텔들은 기상천외한 쇼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이곳 호텔의 무대에는 세계적 스타들만 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MGM 그랜드호텔의 대형무대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당당히 서게 됩니다. 이달 25일 한국의 동방신기, 포미닛 등 인기 가수들이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열광케 할 것입니다. 연예산업의 중심지랄 수 있는 미국, 그것도 가장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인들이 놀랄 기량을 맘껏 뿜어낼 것입니다.

한국의 가요가 미국에 진출한 것을 두고 “두 나라가 친하니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한국 가요가 미국에 상륙하기 전 이미 이웃 아시아 여러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한국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인 ‘생방송 뮤직뱅크’는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중동 등 54개국에 방송됩니다. 한국가수들이 일본가요 순위 상위권을 점령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 가수들이 일본 가요계를 안방 드나들 듯합니다. 한국 가수가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지역을 방문하면 팬들이 구름 떼처럼 몰립니다.

영화배우도 마찬가집니다. 한국 인기배우를 만나려고 외국의 팬들이 텐트를 치고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이 종종 언론에 공개되기도 합니다. 또 한국배우들은 영화의 본산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할리우드에 진출해 톱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가수들은 문화의 도시 프랑스 파리도 겁내지 않습니다. 몇 달 전 파리공항에서부터 팬들의 사인공세를 받은 한국 가수들은 이틀간 계속된 공연에서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파리 시민들을 한국 문화에 흠뻑 젖게 했습니다. 파리 시민뿐 아니라,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 독일, 핀란드, 세르비아 사람들도 모여 환호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연을 통해 유럽을 하나로 묶는 것 같았습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도록 기획된 행사가 열렸습니다. 유럽에서 19개 팀이 참가해 ‘한류의 메카’인 서울 본선진출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남미 칠레에서도 지역예선이 있었는데 우승팀은 현지에서 스타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한국가요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도 남미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한류는 동유럽도 비켜가지 않습니다. 서방 자유세계와 달리 오랜 공산체제에 익숙해 온 동유럽 나라들은 한국과의 우호관계가 수립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한류는 여지없이 파고들었습니다.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 사람들은 대장금, 허준 등 한국 사극에 빠져 있습니다. 하도 인기가 좋아 방송국에서 방송시간을 두 배로 늘렸다고 합니다. 북한의 우방인 중국에도 한류가 불어 닥쳐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중국에 살던 조선족 젊은이가 한국의 가요경연대회에서 우승해 꿈에 그리던 한국에서의 가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류는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있는 북녘 땅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처음엔 아주 조금씩,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이젠 어느덧 한국가요나 드라마 없이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 젊은이들은 한국의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등 인기가수들의 춤과 노래를 배워 친구 생일잔치나 동창모임에서 솜씨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한류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주부들도 한국 가요 CD를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특히 일부에서는 한국 가수의 춤을 추지 못하면 외톨이가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끝난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인기는 북한에서도 대단했습니다. 북한의 남학생들은 주인공의 머리 모양을 본떠 고수머리를 하고 다니고, 여학생들은 여주인공이 입은 격자무늬 치마를 입고 다녔습니다. 장마당에서 격자무늬 천이 동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실미도’ ‘화려한 휴가’ ‘해운대’ ‘괴물’ 등 한국 영화도 인기가 좋습니다. 여기서 ‘실미도’에는 김일성 전 주석의 암살계획이 담겨 있고 ‘화려한 휴가’에서는 한국의 국가가 나오므로 보다가 적발되면 호된 처벌을 받지만, 북한주민의 호기심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탈북자 가운데 10명 중 8명 이상이 북한에 있을 때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얼마 전 목선을 타고 북한을 탈출해 일본으로 표류했다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도 한국 영화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부가 아무리 단속을 해도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한국 가요, 드라마, 영화가 재미있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한국의 가요, 드라마, 영화가 한국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인데도 그처럼 관심을 보이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청취자 여러분은 대뜸 “사상교육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며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북한에 한류 열풍이 뜨겁다 보니 북한의 전통 예술이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선전 선동 일색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북한 주민들은 혜은이, 장윤정 등 한국 가수 이름은 척척 대면서도 북한의 예술인을 거명하는 데는 머뭇머뭇합니다. 재미있고 심금을 울리는 작품은 체제와 사상을 초월해 사랑받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정부는 지금 이 순간도 재능 있는 예술인들을 김씨 일가의 우상화에만 동원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