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로켓 타령'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잡니다.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를 구축하고 튼튼하게 다져가는 게 모든 관계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신뢰는 쌓기 어렵지만 깨기는 쉽습니다. 북한이 곧 장거리 로켓을 쏘겠다고 야단입니다.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국제사회가 “제발 쏘지 말라”는데도 귀를 꽉 막고 있습니다. 평소에 쌓아놓은 신뢰도 별로 없는데 이처럼 막무가내입니다.
과연 북한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로켓 발사로 12월 19일 실시될 한국의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것일까요? 로켓 발사에 안보불안을 우려한 보수세력이 뭉쳐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동안 남북경색 국면이 이어질 것이고, 북한은 이런 대립구도를 내부결속에 이용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남북 간 신뢰 회복 노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반면, 한반도 안정을 위해 북한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는 일부 여론에 힘입어 북한에 유화적인 야당 후보가 당선돼 남북이 다시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는 아닙니다. 북한의 위협적 행동이 일정한 협상을 유도할 순 있겠지만,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후입니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일본과의 고위급 회담도 결렬시켰습니다. 북한 내 일본인 유해발굴이 양국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되는가 싶더니 도루묵이 돼버렸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대북 강경노선을 견지하자, 일본을 통해 외교적 고립의 물꼬를 터보려는 듯하던 북한이 다시 로켓 발사라는 강수를 선택했습니다. 일본과의 대화를 끊어도 괜찮다고 여겼나 봅니다. 대화는 중단되고 살얼음처럼 얇은 신뢰는 단박에 우지끈 깨졌습니다.
로켓 발사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에도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진정성 있는 대화 자세를 기대해 온 미국으로선 북한의 확실한 도발 행동에 직면했습니다. 재집권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엔 북한과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결실을 맺으려 할 텐데, 북한이 초장부터 판을 깨고 있습니다.
북한의 최후의 버팀목인 중국도 로켓 발사의 파장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로켓발사 계획 발표가 나오자, 처음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선에서 매듭지으려 했으나, 국제사회의 비난수위가 높아지자 북한에 신중한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로켓을 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중국이 북한의 혈맹이라지만, 중국의 정책은 자국의 이익에 대한 전략적 판단에 따릅니다. 중국도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으로 난처한 처지에 놓이는 데 지쳤을 겁니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친선관계가 중요한 중국에 북한의 돌출행동이 달가울 리 있겠습니까? 특히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은 김정은의 앞뒤 안 가리는 도발행위가 못마땅할 겁니다.
유럽연합도 로켓 발사를 중단하라고 했고 러시아도 동참했습니다. 유엔은 로켓 발사 즉시 안보리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귀가 따가울 텐데, 일체 반응이 없습니다. 되레 보란 듯 로켓 발사 준비에 속도를 냅니다. 신뢰가 깨지든 말든 개의치 않겠다는 행보입니다.
아니면, 김정은에게 국제사회 눈치 보는 것보다 더 긴급한 사안이 있는지 모릅니다. 김정은은 로켓 발사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주기를 기념하고, 뒤숭숭한 군심을 달래며,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으려고 계산하고 있을 겁니다. 나이 어리고 집권한 지 얼마 안 되는 김정은으로서는 이 일들이 급선무일 겁니다.
그런데 정권 안정은 국민 생활의 안정에 달려 있습니다. 먹는 문제 해결 없이는 국민 생활도 정권도 안정될 수 없습니다. 군인과 일반 주민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장거리 로켓을 쏴댄들 이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우렁찬 ‘충성’ 소리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은 계속 로켓을 펑펑 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을 것인지, 주민에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도록 국제사회와 신뢰를 쌓아나갈 것인지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이미 4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실패한 북한이 이번에 성공해 ‘4전 5기’를 이룬다 한들 쌓이는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가 아니라 적대감뿐이란 점을 김정은은 알고 있을까요?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