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대동강변서 비엔나 커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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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대동강변서 비엔나커피를’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이런 생각 한번 해보셨는지요? 북한의 중심인 평양의 대동강변에 자리 잡은 양각도 호텔에 올라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에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따끈한 서양식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생각 말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허황하다고 발끈하실 겁니다. 한국의 중심 서울에는 전국 각지에 사는 주민 누구나 맘만 먹으면 갈 수 있고, 한층 발전적이며 희망찬 삶을 일궈나갈 수 있지만, 평양에선 그렇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권층만을 위한 평양은 일반 주민에겐 마치 딴 나라의 도시처럼 여겨집니다.

혹 여행허가증을 받아 평양에 가더라도 북한에서 최고의 호텔로 꼽히는 양각도 호텔에 들어가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호텔 안에 있는, 그래서 주로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식당에 자리 잡고 맛난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은 꿈에나 가능할 일입니다. 호텔 창 밖으로 도도히 흐르는 대동강 물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외국산 커피를 음미한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이런 ‘호사’는 일반 주민에게는 그야말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유럽사람들이 즐기는 비엔나커피가 평양에 들어갔습니다. 오스트리아 사업가가 지난 10월 김일성 광장 옆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안 비엔나커피 전문점을 열었습니다. 중국산 커피는 한 잔에 500원, 한국산 커피는 800원이지만, 비엔나커피는 한 잔에 2유로 즉 5천 원 정도 하니 두 달 치 봉급을 내야 합니다. 서민으로선 입맛만 다실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엔나커피는 외국인이나 지갑에 지폐가 두둑한 북한 부유층이 주 고객입니다. 여기에선 유럽식 빵도 구워 팝니다.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 기술을 배운 북한 종업원들이 하루에 30여 명의 손님을 맞습니다.

비엔나커피가 평양에 상륙하기 전에도 이미 피자, 잼, 초콜릿 등 유럽제품이 평양의 면세점에 진열돼 있었습니다. 일반 주민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구매에 한계는 있지만, 북한에 외국 상품이 하나 둘 들어가고 있습니다. 부유층이 외국 상품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북한 주민의 경제사정이 나아지면 외국 상품에 대한 수요 공급은 더 활발해지겠지요. 그렇게 되면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수그러들 겁니다. 주체사상의 담에 막혀 한국과 서방 세계 등 외부를 배척해 온 닫힌 마음도 열릴 겁니다.

북한과의 교역이 활발한 중국 단둥에는 한국제품을 사가는 북한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점퍼, 바지, 내의, 김치냉장고, 보온밥통, 라면 등 한국제품의 인기가 높습니다. 인천과 단둥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이 한국에서 물건을 가져와 팝니다. 고객은 조선족들과 북한에서 나온 상인들입니다. 북한 상인들은 국경지역의 북한 세관에 적발되지 않도록 물건에서 한국산이란 표지를 떼어내거나 글씨가 보이지 않게 덧칠해서 들여갑니다. 심지어 가슴에 김일성 초상휘장(배지)을 단 사람이 버젓이 한국 상품 가게에 들어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그러다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값이 비싸도 사간다고 합니다.

북한사람들이 한국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품질이 뛰어나고 모양새가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북한 부유층이나 특권층은 앞에서는 한국을 나쁜 나라라고 목청을 돋우면서도 뒤로는 질 좋고 맵시 있는 한국 제품을 즐겨 찾습니다. 겉으론 한국상품 유입을 단속한다고 떠들지만, 실제 이들 단속도 한국제품을 선호하는 지배계층이 시행하므로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최근엔 한국상품이 개성공단을 거쳐 평양을 비롯한 내륙 깊숙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 물건을 받아다 장사를 하는 북한 상인들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특히 개성공단 북한근로자에게 간식으로 제공되는 한국의 초코파이가 북한상인에 의해 장마당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한국근로자들 사이에선 새로운 얘기가 아닙니다. 북한 관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있답니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한국제품은 물류비용과 관세 부담이 있지만, 개성으로 들어가는 제품은 이런 부담이 없어 앞으로 더 많은 제품이 개성을 통해 북한에 유입될 전망입니다.

한국제품과 유럽제품 또는 다른 나라 물건이 여러 경로로 점차 북한에 들어갈 겁니다. 일반 주민이 이들 외국산 제품을 좋아하면 할수록 주체사상에 대해선 심드렁하여질 겁니다. 번듯한 제품은 부유층이나 특권층이 독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한국산을 비롯한 외국산에 길들면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할 것입니다. 넓은 세상을 알게 되고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서 개방 외에 다른 묘수가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청취자 여러분, 특권층뿐 아니라 일반 주민도 대동강 물을 바라보면서 맛있는 유럽 빵과 따끈한 비엔나커피를 음미하는 날이 언제 올까요? 이는 북한 정권의 개방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