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수록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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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적을수록 좋은 것'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많을수록 좋은 게 있고 적을수록 좋은 게 있습니다.

가을 추수 때 곡물 수확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흥이 납니다. 밥도 해먹고 떡도 해먹고 두루두루 이웃과도 나누면서 땀의 결실을 맛보면 기쁩니다. 동시에 정부가 군량미랍시고 강제로 거두어 가는 곡물의 양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농사지은 사람의 수중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곡물이 남으려면 정부가 가져가는 게 적어야 합니다.

장마당 하루 벌이가 많으면 집에 돌아가는 상인의 발길이 가볍습니다. 자녀에게 밥과 반찬을 챙겨줄 수 있어 콧노래가 절로 납니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벌이가 많았으면 하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장마당에서 장사할 때 관리인에게 내는 자릿세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3천원합니다. 이 자릿세가 적을수록 장사하는 사람들의 숨통이 트입니다.

당국의 배급이 신통치 않으니, 주민들이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식량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온갖 건설현장에 끌어가는 대중동원이나 쉴 틈을 주지 않는 사상교육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민생이 나아질 겁니다. 마지 못해 나가 당 간부 눈치 보며 일하는 것보다, 확실한 이득이 생기는 일에 매진하도록 하는 게 실생활에 보탬이 됩니다.

집집마다 전기 때문에 난리입니다. 평양은 어느 정도 살만하다지만, 지방은 정전이 밥 먹듯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전기가 들어오는 날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전기가 부족해 기차가 제대로 다니지 못하니 하는 수 없이 버스나 승합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돈 많은 상인들이 공장 기업소와 결탁해 중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와 돈을 받고 일반 주민을 태워주는데, 주민에겐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요금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북한에는 손전화가 150만 대 정도 된다고 합니다. 평양과 큰 도시의 주민들은 다소 여유가 있는지 손전화를 구입합니다. 월 사용료가 약 14달러로 근로자 한달 평균임금의 절반 가까이 되니 서민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입니다. 북한의 손전화는 외부세계와의 직접적인 소통엔 쓸 수 없지만, 외부세계의 소식이 손전화를 매개로 간접적으로라도 조금씩 알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손전화 사용대수는 많을수록, 사용료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경비대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면 생존을 위해, 자유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탈북자들이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정치범수용소가 줄어들수록 좋습니다. 탈북자들까지 가두는 정치범수용소는 아예 완전히 없어져야 합니다.

남한 통일연구원에서 최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기존의 6개에서 5개로 줄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 보고서는 개천(14호), 요덕(15호), 화성(16호), 북창(18호), 회령(22호), 청진(25호) 등 6개에서 회령 정치범수용소가 2012년 5월께 폐쇄됐다고 언급했습니다. 보고서는 회령 수용소에 있던 수감자들을 다른 수용소로 분산 배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열악한 수용소 생활로 사망하는 수감자들이 많아 수용소가 줄어들고 있다고 추정하면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북한정권의 인식이나 정책이 변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정치범수용소의 숫자가 적어진 것을 인권개선의 징후로 유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범수용소 인원은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20만 명으로 추산하고, 남한정부는 15만여 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연구원의 이번 보고서는 12만 명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설령 보고서의 추산대로 정치범수용소 인원이 12만 명으로 줄어 든 것이 사실이라 해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수입니다. ‘12만 명’이란 수는 더 구체적인 인권유린의 증거나 증언이 불필요할 정도로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정치범수용소가 모두 사라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단숨에 그렇게 되는 게 불가능하다면 조금씩 적어져도 좋습니다. 이와 함께, 수용소 인원도 점점 적어지면 좋겠습니다. 적을수록 좋은 것 가운데 북한의 정치범수용소가 으뜸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