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남북녀의 세상사는 이야기>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7월 7일은 한국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된 지 꼭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던 1967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42달러. 공사비만 4천만 달라 가까이 들어갔는데요. 이는 국가 예산의 23%나 되는 큰돈이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어찌 보면 황당하기까지 했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단순히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시간을 단축시킨 것을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번 시간은 개통 40년을 맞은 한국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얘기입니다. 오늘도 탈북자 이나경 씨와 함께 합니다.
노재완: 안녕하세요?
이나경: 네. 안녕하세요.
노재완: 지난 한 주 잘 보내나요?
이나경: 네, 덕분에요. 날씨가 더운 거 빼고는 다 좋았습니다.(웃음) 근데 요즘 평일에도 고속도로에 차들이 많더라고요. 어제 강릉에 일이 있어 잠깐 다녀왔는데, 차가 꽤 밀리더라고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니까 대부분 휴양을 위해 떠나는 차들인 것 같더라고요. 참, 아침 신문을 보니까 서울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40주년이 되었더라고요.
노재완: 벌써 40년이 됐네요. 총길이 428km인 경부고속도로는 그동안 한국 산업과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가 만만치 않았는데요.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는데,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셈이죠.
이나경: 신문에선 공사비만 429억원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달러로 환산하면 4천만 달러 가까운 돈 아닙니까?
노재완: 대략 그 정도 되겠네요.
이나경: 4천만 달러면 지금도 큰 돈인데, 40년 전을 감안하면 엄청난 돈이 아닐 수 없는데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였다고 하더라고요. 왜 아니겠어요.
노재완: 맞습니다. 당시 한해 국가 예산의 4분의 1을 투입했을 정도로 많은 돈이 투입됐는데요. 대부분의 공사를 남측 건설회사와 군 토목 기술만으로 이뤄냈다는데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단순히 고속도로 건설이 아닙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뭐라 할까요. 경부고속도로 완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부심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죠.
이나경: 사실 경부고속도로 완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노재완: 네, 맞습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서울-부산간 이동거리는 무려 15시간이었는데요. 현재 서울에서 미국의 뉴욕을 오가는 비행거리보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5시간 만에 서울에서 부산을 가게 됐습니다.
이나경: 경부고속도로를 계기로 계속 고속도로가 건설됐을텐데요. 지금은 고속도로가 몇 개나 됩니까?
노재완: 한국의 고속도로는 현재 35개 노선 3천776km에 달하고 있습니다. 40년 만에 이렇게 팽창한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고속도로 총길이 6000㎞를 목표로 계속 건설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나경: 남쪽에 처음 와서 제가 가장 놀랐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전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고속도로였습니다. 전국 어디나 5시간 안에 갈 수 있습니다.
노재완: 방금 말씀하신대로 지금 한국은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의 산업화는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1970년 하루 평균 만 대였던 고속도로 이용차량이 지난 2007년 323만대로 358배 증가했으며, 1967년 5만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보유 대수도 1680만대로 급증하는 등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세계 5위로 올려놓았습니다. 그 뿐인가요. 고속도로 건설로 축적된 기술력은 70년대 중동 건설 붐으로 연결됐으며, 한국을 세계 건설시장의 강자로 이끌었습니다.
이나경: 그러고 보면 경부고속도로는 지난 40년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됐네요. 대단합니다.
노재완: 어떻습니까. 북한의 고속도로도 오래전에 건설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나경: 북한은 평양 남포간 고속도로가 가장 먼저 건설됐는데요. 여기 서울 인천 처럼 짧은 구간이고요. 긴 구간으로 평양 원산을 잇는 고속도로가 1978년 경에 건설됐습니다. 험난한 지역이 많아 건설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후에 1980년 말 원산-금강산, 1990년대 들어 평양-개성, 평양-향산 간 고속도로가 건설됐고요. 평양-개성(92.4 개통)간 고속도로는 남북 관계 등을 고려해 만들어졌고요. 평양-향산 간 고속도로는 묘향산 관광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북한에선 자강도와 양강도, 그리고 함경북도에는 고속도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재완: 북한이 자랑하는 청년영웅도로도 있잖아요.
이나경: 네, 평양-남포간을 잇는 고속도로인데요. 이 고속도로는 2000년 당창건기념일(10월10일)을 맞아 개통됐습니다. 전국 각지의 청년돌격대원들과 군인이 연 5만 명 동원돼 만들어졌는데요. 북한 당국은 이 도로를 맨손으로 만들었다면서 '청년영웅도로'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네, 오늘 <남남북녀의 세상사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 이나경, 제작에 서울지국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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