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북녀의 세상사는 이야기] 김정일 사망

북한 주민들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참배하고 있는 모습을 21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북한 주민들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참배하고 있는 모습을 21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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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멘트]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남북녀의 세상사는 이야기>시간입니다. 진행에 노재완입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 이는 명백한 진리인 것 같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고 독재정치를 할 것만 같았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지난 17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1974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37년 만에 김 위원장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게 된 겁니다.

이 기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고, 특히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때문에 북한 주민에게는 김정일 시대가 '배고픈 시대'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시간은 김정일 사망에 대한 얘깁니다. 오늘도 탈북자 이하영 씨와 함께합니다.

노재완: 안녕하세요?

이하영: 네, 안녕하세요.

노재완: 지난 월요일 북한 당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했는데요. 3일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이 김정일 사망소식을 시시각각 전하고 있습니다.

이하영: 처음에는 북한 선전매체가 발표한 것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가 이뤄지다가 이젠 김정일 사망의 시점과 원인을 놓고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노재완: 훗날 역사는 김 위원장의 사망을 정확히 밝히겠죠. 오늘은 일단 김 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서 이하영 씨의 생각과 느낌을 듣고 싶습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하영 씨는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이하영: 그날 김정일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솔직히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만감이 교차했죠. 우리 북한 인민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독재자의 죽음이 결국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대한 영도자'라는 김 위원장도 일흔도 못 넘기고 가는 것을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어찌도 그리 살았는가 말입니다.

노재완: 김 위원장 사망소식에 지금 북한 주민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어떤 생각들을 할까요?

이하영: 수십 년간에 걸친 당국의 선전으로 진짜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평양 시민들을 비롯해 배급을 타 먹는 주민들이 여기에 해당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슬픔을 표하지 않으면 고발당할 수 있어 억지로라도 우는 표정을 지을 겁니다. 그건 제가 북한에 살아본 사람으로 잘 압니다.

노재완: 그러면 잠시 여기서 조선중앙텔레비전에 나온 북한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이하영: 네.

[녹취: 북한 주민들의 인터뷰, 조선중앙TV]

노재완: 어떻습니까? 들어보시니까.

이하영: 텔레비전 카메라가 가까이 오면 어쩔 수 없어요. 저렇게 울면서 장군님을 떠난 비통함을 얘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주민들은 김정일 사망사실 자체보다는 앞으로 북한이 어떤 방향으로 갈까 그걸 더 걱정할 겁니다. 절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생각할 때 김정일 독재기간 가난과 배고픔만을 겪었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품을 것 같아요. 물론 중앙당 간부 등 기득권 세력들이야 권력을 잃을까 전전긍긍하겠죠.

노재완: 다른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이젠 김 위원장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존경심도 많이 사라진 상태라고 하는데요.

이하영: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북한에서 군인들은 다를 것 같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군인들도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거든요. 내년 강성대국을 선포한다고 해서 고생이 끝날 것으로 기대하는 북한 주민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희망이 보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죽고 없어졌으니 변화가 있지 않겠습니까.

노재완: 그렇지만, 후계자 김정은이 계속 이어서 통치를 하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이하영: 신처럼 여겼던 김 위원장도 해결하지 못한 경제난을 경험 없고 업적도 전혀 없는 김정은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식 개혁개방만이라도 해야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주민은 물론 정권의 실세들도 하고 있을 겁니다. 문제는 정권 유지죠. 정권 유지는 후계자 김정은만의 일이 아닙니다. 권력 실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후계자 김정은이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직계 자손이라는 이유로 선대의 행보를 부정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선대의 행보를 부정하면 자신의 권력승계도 당위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결국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할 겁니다. 그렇지만 누구든 김정은을 대신해 권력을 장악한다면 김씨 왕조를 부정하는 절차를 거쳐 새로운 정책 변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외부와 단절된 정보를 북한 주민들이 계속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노재완: 대체로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장은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조용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적어도 수개월은 혼란이 없을 것이란 뜻이죠.

이하영: 선대 수령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유교적 관념처럼 자리 잡은 북한입니다. 눈물도 채 마르지 않은 시점에서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겠죠.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권력 실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존재하던 갈등이 점차 표면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후계구도를 채 굳히지 못하고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이 이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판단과 대비책을 세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노재완: 네, 결국 후계자 김정은의 지도력이 어느 정도이겠는가가 관건일 텐데요. 김정일이 없는 북한을 잘 이끌어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공영방송인 BBC는 인터넷판에서 한국 내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북한은 권력이양이 완성되지 않아 매우 불안정한 시기"라며 "내부문제 해결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는 특징이 있는 만큼 도발을 포함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스도 인터넷판 뉴스에서 "김정일의 죽음은 경험 없는 아들에게 굶주림에 헐벗고 핵 무장된 나라의 안정이라는 과제를 안겨줬다"고 기사 첫머리를 뽑았습니다.

이하영: 북한이 살 길은 개혁과 개방뿐입니다. 만약 앞으로 북한이 김정일 때와 같이 철권통치를 할 경우 북한 사회를 보는 세계인의 시각은 북한을 하나의 감옥으로 볼 것입니다.

노재완: 우선 북한 내부적으로 절대 권력자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인데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게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하영: 세상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후계자 김정은이 다 쓰러져 가는 북한을 홀로 지탱하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도 어리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은 북한의 향후 행보를 눈여겨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대비해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은 일시적일 것이며 마침내는 북한에서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노재완: 지금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보다 더 여파가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김정일이 20여 년간의 후계 학습을 통해 김일성 사망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그때와 전혀 다릅니다.

이하영: 추운 겨울 국상을 치르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주민들의 기본생활이 보장돼 먹을 걱정이 없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우리 북한 동포들이 지금의 시련을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네, 오늘 <남남북녀의 세상사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 이하영, 제작에 서울지국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