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 “이산가족 명단 전달, 불편”

0:00 / 0:00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 시작합니다.

==================================

<북 주민 "이산가족 명단 전달, 불편">
-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크게 반기지 않아
- 북측 이산가족에 신분의 불이익, 경제적 부담
- 이산가족 명단 교환에 오히려 마음 졸이기도
- 한국 가족의 경제적 지원도 뺏기고, 오히려 과다 지출
- 북·중 간 물적-인적 교류, 요즘 활기 떨어져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명단교환을 연내에 실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의 통일부는 한국 내 이산가족 6만여 명의 현황을 9월 중순까지 파악해 북한에 모두 전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는데요, 이산가족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매년 많은 이산가족이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산가족 명단을 전달하겠다는 소식에 북한 주민은 오히려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올 추석에 북한의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한국 내 이산가족의 기대와 달리 북한 주민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반세기 넘게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데에 북한 주민이 반응은 왜 이렇게 다른지, 북한 주민의 말을 들어본 김준호 특파원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준호 특파원이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안녕하세요.

[김준호 특파원] 네, 안녕하십니까? 중국입니다.

- 네. 김준호 특파원. 조금 전 언급했습니다만, 반세기가 넘도록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의 아픔은 남과 북의 주민 모두 같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북한 주민은 우려하고 있다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김준호 특파원] 네, 여기에는 몇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북한 정권도 이를 원치 않고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 당사자들도 이산가족 상봉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북한 주민에 따르면 우선 북한 당국 자체가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의 만남을 아주 싫어하는데요, 자본주의 사상을 북한 주민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북한보다 풍요롭게 사는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과 접촉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 주민의 사상에 동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과거에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해 엄청난 홍역을 치러야 했는데요, 한국의 이산가족을 만나는 북한 주민을 불러 모아 한 달 이상 사상교육을 해야 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북한 주민에게는 영양보충을 해 보기 좋게 살도 찌우게 해야 하고, 상봉장에 나가는 주민의 의복도 챙겨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장소로 거의 북측 지역을 고집하기 때문에 상봉 장소에 대한 준비도 고스란히 북한 몫이 되는데요, 장소를 준비하고, 행사진행 요원들을 훈련하는 일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 네, 북한 당국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를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은 왜 이산가족 명단을 교환하는 것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건가요?

[김준호 특파원] 네. 자유아시아방송이 접촉한 여러 명의 북한 주민의 말을 종합해보면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을 여러 계층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에 친인척을 둔 이산가족들은 적대세력 또는 감시 대상자로 분류돼 있습니다. 이들은 당원이 될 수 없고,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2세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자신이 한국에 가족이나 친인척을 둔 이산가족이지만, 이를 숨기며 사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합니다. 본인은 물론 자식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로부터 이산가족 명단이 전달되면 지금까지 이산가족임을 숨기며 살아왔던 사실이 탄로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과거에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있을 때 남한의 이산가족이 상봉 신청을 하면서 북한 주민 중에는 지금까지 이산가족임을 숨기며 살았던 것이 들통 난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뒤에는 당원이었던 사람이 출당되거나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 쫓겨나게 됐다는 것이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정부가 이산가족 명단을 북한에 전달한다는 소식에 당사자들은 가슴을 졸여야 한다고 북한 주민은 말합니다.

- 혹시 중국에 친인척이 있어도 마찬가지인가요? 중국 내 친인척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주민도 있지 않습니까?

[김준호 특파원] 네. 북한에서는 중국에 친인척이 있어도 공직을 맡지 못합니다. 이전에 중국에 고모가 있는 것을 숨기고 공직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이 사실이 드러나 결국 공직에서 해임됐다는 북한 주민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북한 주민의 심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산가족 상봉을 하면 한국의 가족이 북한의 가족에게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상봉 이후에도 다른 경로를 통해 계속 도움을 받을 기회도 있지 않을까요?

[김준호 특파원] 네,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북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 때 남한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줄 수 있는 돈은 한정돼 있는데요, 이마저도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 돈을 빼앗긴다고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준비하는 기간에 합숙하며 먹고 잔 숙식비용과 상봉장에 입고 간 옷값 등을 북한 당국에 모두 정산해야 하고, 고향에 돌아가서는 동네 주민에게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한턱을 내야 한다고 겁니다. 그러다 보면 한국의 가족에게 받은 몇백 달러의 경제적 지원보다 오히려 모자라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고 북한 주민은 전했습니다.

또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서로 살고 있는 주소나 전화번호라도 주고받으면 훗날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상봉장에서 북한 보위부 요원의 감시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상봉행사 이후 남한 내 가족과 접촉은 할 수 없다는 말이 되겠지요. 실제로 중국의 대북소식통이 과거 이산가족 상봉을 했던 북한 주민의 부탁을 받아, 이름과 지역, 교회 정보만 받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똑같은 이름의 교회만 16개나 나오더랍니다. '이러니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느냐?'라는 것이지요.

- 네, 한국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추진하는 움직임에 한국 내 이산가족은 올 추석에 북한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에 관한 기대를 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 주민은 꼭 그렇지 않다는 분위기를 잘 알 것 같습니다. 또 정말 북한 주민이 이런 이유로 우려하고 있다면 이산가족 명단의 교환을 추진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요.

김준호 특파원, 끝으로 요즘 북·중 국경 지방의 인적·물적 교류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곳의 분위기는 좀 활발한지요?

[김준호 특파원] 네, 북·중 간 물적 교류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역량은 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으로 관측됩니다. 무엇보다 개인 무역의 활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무역 관계자들의 말을 들을 수가 있고요, 특히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광산물, 즉 몰리브덴, 아연 정광, 마그네사이트 등과 무연탄의 입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대북 무역 관계자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또 인적 교류도 많이 줄어든 것으로 관측되는데요,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사사여행자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도강증으로 단기간 중국에 들어오는 북한 주민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관측됩니다. 이밖에 중국에서 북한으로 나가는 관광객도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여행사 관계자들의 증언도 있습니다.

- 네. 잘 알겠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준호 특파원] 네. 고맙습니다.

북한 당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산가족 명단의 교환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이산가족 상봉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 사안을 한미연합 군사훈련과 연계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밝혔는데요, 이처럼 북한은 한국 정부가 남북의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할 때마다 이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전제 조건을 달아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이 화력 도발을 감행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은 더 높아지면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올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성사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어쩌면 북한이 이처럼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을 하고 군사적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부담스러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피하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