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의 초점으로 시작합니다.
- 북한을 탈출해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는 20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탈북자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일본 사회의 외면과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해 살고 있는데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 안전에 마음까지 불편합니다.
"혹시 자기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면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조총련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봐 걱정을 많이 합니다."
지난날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갔다 탈북한 재일조선인과 가족들, 그리고 일반 탈북자들이 일본 사회에서 정착해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찾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삶을 조명해봅니다.
- 일본 내 탈북자 대부분 자신의 신분 감춰
-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북한에 남은 가족의 안전 우려
- 일본에 탈북자 특별 지원 없어, 현실적 어려움 직면
- 탈북자 사이에 태어난 자녀, '북한' 숨기고 정체성 고민
일본 오사카에서 의류 판매일을 하는 탈북자 김명수 씨.
10년 전 일본 친척의 도움으로 북한을 떠났습니다. 10대의 나이에 탈북해 일본에 정착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도 "자신이 북한에서 온 것을 비밀로 해 달라"며 신분을 숨깁니다.
일본에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탈북자 출신임을 밝히면 주변에서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볼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오사카 남부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나 10대 때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간 이순자 씨. 그녀도 수년 전 정치문제에 휘말려 탈북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고향인 오사카에 정착했지만, 예전의 모습과 따뜻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탈북자의 고민을 친절하게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지원자 외에는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일본에 있는 친척도 순자 씨에게는 냉담한데요, 이제 60대가 되었지만,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순자 씨는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일본인들의 마음"이라며 "모두 정신없이 바빠졌고, 정이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일본에는 약 200여 명의 탈북자가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도쿄에 약 150명, 오사카에 약 50명으로 추산됩니다.
1960년대에 있었던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건너간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아내, 그리고 북한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대다수인데요,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200명까지는 숫자가 빨리 늘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무작정 중국에 넘어가 친척에 연락하거나 도와줄 지원단체를 찾아서 일본에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통제와 단속이 심해지면서 일본에 먼저 입국한 사람이 브로커를 써서 일본으로 데려오는 사례가 많아졌어요. 먼저 일본에 온 탈북자는 100%가 원래 일본 출신이고, 그들의 자녀와 일본인 처, 그러니까 60년대에 재일조선인 남편과 같이 북한에 귀국한 사람들이죠.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본인 스스로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밝힐 수 없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우선 일본인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 그리고 북한의 잔혹한 인권상황과 기아 등 북한의 민낯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나빠졌습니다. 또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거나 북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고 오해를 받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의 안전 문제인데요, 자신이 탈북해 일본에 정착한 것이 발각되면 일본 내 조총련이 평양에 알려 가족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Ishimaru Jiro] 첫째는 일본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기 때문에 '혹시 자기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면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박해를 받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조총련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일본에서는 1959년 12월부터 시작된 귀국사업을 통해 9만 3천여 명의 재일조선인이 북한에 건너갔습니다. 이 중에는 일본국적자 약 7천 명도 포함됐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지상낙원'이란 믿음이 깨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북한 내 차별에 따라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수도 없었고, 사회복지혜택도 받을 수 없어 대부분 빈곤에 허덕였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정권과 일본 내 조총련은 재일조선인의 귀국을 독려했는데요,
[Ishimaru Jiro] 일본 귀국자들은 바로 감시대상이 되고, 문화 차이도 있어서 현지 주민으로부터 많은 소외감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 차별받고 빈곤 속에서 살아온 재일조선인들이 북한에 넘어가서도 차별을 받고, 그 당시 일본보다 가난한 북한에서조차 경제적 고통도 겪고요. 그래서 '일본에서 귀국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물론 북한에 부모·형제·자식을 보낸 사람들, 그러니까 일본에 남은 사람도 고생했어요. 친척들 살리자고 경제적 지원을 해 왔죠. 그런데 탈북 후 일본에 돌아온 귀국자들이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아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정말 불행하죠.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탈북자를 위한 특별지원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내 탈북자는 언어부터 시작해 직업·진학·육아 등 다양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요, 자원봉사자의 도움에 의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중에서도 젊은 탈북자는 직업을 갖고 일본에서 정착하려 애를 쓰지만, 고령의 탈북자들은 대부분 일본 정부로부터 받는 생활보호비로 살아가는데요,
[Ishimaru Jiro] 제도적으로 탈북자에 대한 전문적인 지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탈북자만 돕자면 별도의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법이 없어요. 그래서 2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은 일반적인 사회복지 제도는 있지만, 탈북자만 지원하는 제도는 없어요. 그래서 적응이 어려운 측면도 있고, 정착 지원교육이 제도적으로 없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는 고생도 많이 하죠.
이시마루 대표에 따르면 일본 사회에서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인권유린이 심각한 북한 사회에서 고생이 많았다는 동정, 이제 일본에서 자유를 찾아 열심히 살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왜 일본에 왔느냐?'라는 냉정한 시선입니다.
이제는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탈북자들은 앞으로 일본에서 살아갈 자녀에게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탈북자의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요,
[Ishimaru Jiro]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10명이 넘었을 겁니다. 물론 이 아이들은 북한 사회를 모르고요, 일본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부모들이 교육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학교에 보낼 때도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한국에서 왔다는 식으로 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결과적으로 한국 국적을 가질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나중에 이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어요.
지난해 오사카 동부의 한 병원에서 젊은 탈북자 부부 사이에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에게 일본은 '북한'이란 뿌리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요?
이시마루 대표는 아직 일본 사회가 사회적 편견부터 사회보장제도에 이르기까지 탈북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일본 사회가 최악의 인권상황에 놓인 북한을 이해하고 그곳을 떠난 탈북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주며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도 마련되기를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들과 이시마루 대표는 바라고 있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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