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세상] 무관심 속에 결국 숨진 북한 꼬제비

혜산시의 한 어린 꼬제비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 이 꼬제비는 북한 주민의 무관심 속에 며칠 뒤에도 같은 자리에 쓰러져 있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
혜산시의 한 어린 꼬제비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 이 꼬제비는 북한 주민의 무관심 속에 며칠 뒤에도 같은 자리에 쓰러져 있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진-아시아프레스 제공 비디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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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의 초점>으로 시작합니다.

<오늘의 초점>

2012년 11월, 일본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내부 취재협력자가 촬영한 북한 양강도 혜산시와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모습에는 많은 꼬제비(꽃제비)들과 이삭을 줍는 북한 주민이 등장합니다.

특히 혜산시장 안팎에는 어린 꼬제비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고, 심지어 한 꼬제비가 길거리에 쓰려져 죽어가지만, 북한 주민은 무관심한 듯 각자 제 갈 길을 가는데요,

"혜산에서 나온 탈북자가 1시간 30분가량 동영상을 보고 "확실히 꼬제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또 신의주시의 추수가 끝난 밭에서 떨어진 벼 이삭을 줍는 북한 여성들의 모습은 고단한 북한 주민의 삶을 엿보게 합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은 <지금 북한에서는> 시간을 통해 북한 꼬제비의 심각성과 북한 주민의 생활을 살펴봅니다.

- 2011년 촬영한 양강도 혜산시
- 시장 안팎에 길거리 헤매는 어린 꼬제비들
- 북한 주민의 무관심, 쓰러진 꼬제비는 숨진 듯
- 북한은 "꼬제비 없다" 변명하지만 더 늘어나
- 벼 이삭 줍는 북한 여성, 삶의 고단함 보여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8일,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제공한 동영상에서 북한 양강도 혜산시와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내부 취재 협력자가 촬영한 영상에는 많은 꼬제비(꽃제비)들과 이삭을 줍는 북한 주민, 그리고 혜산시장 등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이는 불과 2개월 전인 지난해 11월에 촬영한 최신 영상으로 북한 내부의 실상과 주민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영상에서 엿볼 수 있는 혜산시장은 많은 사람으로 분주한 모습입니다. 푸짐하게 늘어놓은 쌀 포대마다 쌀이 가득하고 당시 가격표에는 '4800', '5200'이란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또 고기 매대에서는 판매원들이 고기를 다듬는 데 열심입니다.

매대마다 쌀과 고기 등 음식이 진열돼있고, 판매원과 물건을 사려는 북한 주민들로 시장은 북적이지만, 장마당 안팎에는 꼬제비들이 서성입니다.

동영상 속의 한 여자 꼬제비는 음식을 데우는 불에 손을 녹이고 있고 시장 밖에서 만난 꼬제비들은 무언가를 입에 넣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린 아이들입니다.

손에 보따리 짐을 들고 주택가를 거니는 또 다른 꼬제비. 6~7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제비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그간의 삶의 여정이 묻어나옵니다. '집이 어디고 부모가 있느냐?'는 물음에 '없다'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떨굽니다.

그의 표정에서 어린 나이에 부모의 보살핌과 보금자리 없이 떠돌아다닌 지난날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에는 꼬제비의 죽음이 일상화된 듯한 장면도 나옵니다. 한 꼬제비가 공용화장실 벽 아래 쓰러져 있는데요, 하지만 자전거를 끄는 남성과 젊은 여성 등 북한 주민은 무관심한 듯 길가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꼬제비 곁을 지나갑니다. 동영상을 촬영한 취재협력자는 "이 꼬제비가 며칠 뒤에도 같은 장소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며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밖에도 당시 혜산시장 주변에는 음식물을 구하기 위해 시장 부근을 배회하거나 텅 빈 매대에 기대어 자는 어린 꼬제비의 모습도 있었는데요,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혜산시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확실히 꼬제비가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Ishimaru Jiro] 혜산은 국경도시이고,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물자와 식량이 있는 편이죠. 생활 수준도 다른 도시에 비해 좋은 편인데, 그래도 꼬제비의 모습이 많이 보이거든요. 혜산에서 나온 탈북자가 1시간 30분가량 동영상을 보고 "확실히 꼬제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중조선인총연합회'는 지난 17일 대변인 담화에서 한국의 'MBN'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언론들이 북한의 꼬제비에 관해 보도한 데 대해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최근 '광명성 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때에 한국의 언론들이 케케묵은 꼬제비 타령에 매달리고 있으며 이는 북한 체제를 중상모략하기 위해 써먹는 모략적 책동의 하나라는 겁니다. 하지만 유령단체로 알려진 '재중조선인연합회'의 이같은 주장은 사실상 꼬제비의 실상을 부인하려는 북한 당국의 변명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현재 북한에 거주하는 여성도 지난달 '아시아프레스'의 취재협력자에게 꼬제비의 심각성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북한 여성] 평양이나 간부 새끼들이나 잘 처먹겠지. 백성은 더 못살고. 지금 꼬제비들이 얼마나 많다고. 장마당이고 역전이고, 굶어 죽는 게 부지기수지.

-꼬제비들이 많은가?

[북한 여성] 말도 못하게 많지. 장마당에 그저 조금 먹는 거 채가고 매 맞고...그런 거 보면 가슴이 아파서...

북한 당국은 꼬제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만 이처럼 북한 내부에서 촬영한 동영상과 현지 주민의 증언은 길거리를 헤매는 꼬제비의 심각성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동영상에는 북한의 열악한 대중교통의 현실도 드러내는데요, 혜산시의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한 대 도착하자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몰려듭니다.

이미 버스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타고 내리기조차 어려운 상황인데요, 버스가 그냥 출발하자 아예 버스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버스는 북한 당국이 운영하지만 계속 적자가 쌓이면서 기름 수요, 차량 수리 등이 원활하지 못해 이처럼 북한 주민이 버스를 이용하기는 더 어려워졌는데요,

[Ishimaru Jiro] 북한의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의 수단을 보면 단순히 교통수단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북한 전체의 경제난이 교통수단의 마비로 이어지는 것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촬영한 평안북도 신의주의 모습에는 수확이 끝난 뒤 밭에서 이삭을 주워 모으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 '쌀'이라고 답하는데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벼 이삭을 담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힘겨운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동영상 속 북한의 모습에서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제하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시대에 들어섰지만 지방에 사는 북한 주민의 생활은 여전히 힘들고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엔의 마르주키 다루스만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지난 2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체제가 출범한 이후에도 1천600만 명이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등 북한 주민의 인권과 생활 수준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북한 지도부가 주민의 생활 여건을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자원을 재분배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또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지난해 10월, 북한 주민 4명의 말을 인용해 평양에는 새로 지은 고급 아파트와 외제 승용차가 많이 늘어나는 등 상류층의 삶은 더 화려해졌지만 일반 주민의 생활 수준은 개선된 것이 없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2013년 신년사에서 '경제강국의 건설', '인민생활의 향상'을 강조한 김정은 제1비서. 올해는 길거리를 헤매는 꼬제비들이 많이 사라지고 북한 주민의 생활 수준이 개선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