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원하면 돕겠다고까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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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의 초점으로 시작합니다.

-'중국식 개혁개방'을 주장하고, '3대 세습'을 비판하면서 동생이 원하면 언제든지 평양에 가서 도울 것이라고 했던 김정남 씨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습니다. 북한 체제를 비판했던 김정남 씨는 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해외를 떠돌았는데요, 결국 비참하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북한의 개혁개방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라고 느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김정남 씨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없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7년 동안 김정남 씨와 전자우편을 주고받고, 두 번의 인터뷰를 했던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 요지 기자는 김정남 씨를 인간적이고 외로웠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또 북한의 문제점을 알았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던 사람이라고 평가하는데요, 고미 요지 기자와 함께 김정남 씨를 회상해봅니다.

- 고미 요지 기자 "그의 죽음, 충격적"

- 김정일에게 개혁개방 주장하고, 3대 세습 비판했던 비운의 황태자

- 아버지에 대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상처, 외로움 느낀 인간적인 사람

- 아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 신변 위협에도 아들 걱정해

- 김정남의 죽음으로 북한 개혁개방에 대한 희망도 사라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씨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제적 개혁개방을 주장하고, 3대 세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하지만 늘 신변위협의 불안함 속에 해외를 떠돌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지독한 외로움을 토로해 '비운의 황태자'로도 알려진 김정남 씨.

특히 김정남 씨는 동생이 원하면 언제든 평양에 들어가 김정은 위원장을 도울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의 마지막은 피살이었는데요,

김정남 씨와 개인적으로 150여 통의 전자우편을 주고받았고, 직접 두 차례나 만나 북한에 대한 그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던 일본 도쿄신문의 고미 요지 기자를 통해 김 씨를 되돌아봤습니다.

[Gomi Yoji] 아주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프고, 왜 이런 시기에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김정남 씨는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고, 계속 해외에 있었고, 김정은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는데, 이번 사건이 왜 일어났을까? 마음의 정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김정남 씨의 피살 소식을 접한 이후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통화한 고미 기자의 첫 심정입니다.

고미 기자는 김정남 씨가 피살된 이유로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북한 주민의 불만과 비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공포통치로 일관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시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간부들의 과잉된 충성경쟁 탓일 수 있다고 추정했는데요, 끊임없는 숙청과 해임 등으로 불안한 김정은 위원장의 측근들이 앞장서 김정남을 제거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Gomi Yoji] (김정은의 승인)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충성 경쟁을 해서 과격한 행동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잘 아시다시피 여러 간부가 숙청되거나 해임되는 일이 계속 생기지 않았습니까? 김정남 씨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측근 사람들이 무서워서 김정남 씨를 제거하자고 결정해서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고미 기자와 주고받은 김정남 씨의 말을 살펴보면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은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었습니다. 유학을 끝내고 북한에 돌아온 김 씨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경제를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고 조언했고, 이에 반대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큰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고미 요지] 김정남 씨는 스위스에서 귀국한 후 계속 개방개혁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하고 많이 싸웠는데, 개혁개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김정남 씨의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변함이 없는데, 아버지하고 의견이 달랐다는 거죠.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아버지와 아들의 감정이 살아있었습니다. 자신의 생일이나 중요한 날, 또는 명절이 되면 아버지에게 전화도 오고... 만나기는 힘들었지만, 전화통화는 자주 했다고 합니다.

또 고미 기자는 김정남 씨에게 몇 번이나 물어봤습니다. 장남으로서 김정은 위원장이 부탁하면 평양에 들어가 도울 생각이 있느냐? 고 말입니다. 당시 김정남 씨의 대답은 "충분히 있다. 언제든지 갈 수 있다"였습니다.

김정남 씨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고미 기자는 김 씨에 대해 '북한을 바꿔보고 싶지 않았을까?'라고 회상합니다.

김정남 씨가 고미 기자와 대화할 때마다 매번 강조한 것은 바로 중국식 경제개혁이었는데요, 엄청나게 발전한 중국의 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북한도 핵 개발, 미사일 발사, 남한에 대한 도발 등에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경제 정책을 김정남 씨에게 맡기면 어떻겠냐?'는 말도 있었는데요,

[고미 요지] 김정남 씨는 인터뷰를 할 때 매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개방개혁, 특히 중국식 개방개혁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직접 중국의 상해와 남쪽의 발전한 중국 도시를 스스로 순방했대요. 거기서 눈으로 보니까 '사회주의를 지키면서 외자를 유치하고 발전할 수 있다. 북한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먼저 국제적인 신용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핵개발이나 미사일 발사, 남한에 대한 도발 등을 계속하면 투자를 받을 수 없고 어려움이 계속되기 때문에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고미 기자는 일본 내 탈북자와 북한 내부에서도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 인물로 김정남 씨를 기대했던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피살로 이 같은 희망은 사라졌다고 꼬집습니다.

고미 기자는 김정남 씨 피살 사건의 파장으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복잡해질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만약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살해됐다면 북한과 김 위원장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는 더 추락해 국제적 고립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Gomi Yoji] 정말 저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만난 다른 탈북자들도 김정남 씨의 말을 들으면 '혹시나 북한도 변할 수 있다', '북한 내부에서도 북한의 개혁개방이 필요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라고 느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김정남 씨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없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망스럽고 안타깝고, 매우 마음이 아픕니다.

김 씨는 아버지와 너무 다른 생각, 버림받은 어머니에 대한 상처, 오랫동안 외국에서 혼자 떨어져 지낸 세월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김 씨의 취미는 컴퓨터 게임이었고, 게임을 통해 전 세계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언제든지 전화나 인터넷 등으로 다른 사람과 접속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는 성향을 드러낸 것인데요,

고미 기자도 7년 동안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면서 김 씨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또 김 씨는 아들인 한솔 군에 대한 사랑도 컸는데요, 고미 기자에 따르면 김 씨는 늘 신변의 위협에 불안해하면서도 아들인 김한솔 씨의 안전을 고려해 언론과 인터뷰도 자제할 것이란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김 씨는 싱가포르 등에서 종종 아들 한솔 씨와 만나 식사도 했으며, 부자간 사이도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Gomi Yoji] 특히 자기 아들 한솔 씨가 프랑스의 대학에 다니니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당분간 인터뷰는 안 할 거라는 말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습니다. 지난 5년간 계속 연락을 했는데,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현재 한솔 씨는 프랑스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끔 아버지를 만나 식사도 했대요. 둘 사이가 아주 좋고 자주 만났다고 합니다.

고미 기자가 김정남 씨와 대화에서 느낀 것은 북한 사람도 스스로 문제점을 알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북한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됐는데요,

[고미 요지] 다시 한번 저도 느끼게 됐습니다. 일본에서는 무조건 안 좋고, 모략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도 많지만, 김정남 씨뿐만 아니라 다른 북한 사람도 스스로 문제점을 느끼고 있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김정남 씨는 생전 고미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자로서 사명감과 진지함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 누구보다도 북한의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잘 알았고, 북한 주민 사이에서도 기대를 모았던 김정남 씨는 결국, 자신의 동생에게 피살됨으로써 비운의 삶을 마감했는데요, 김정남 씨가 이루지 못한, '북한을 잘 사는 국가로 만들고 싶은 꿈'도 그의 죽음과 함께 당분간 풀지 못하는 숙제로 남게 됐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