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평가기관 '다라'가 지난 7일 '인도주의 반응지수'를 조사해 발표했는데요, 미국과 일본 등이 많은 액수의 원조를 하고 있지만 효율성, 만족도 면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조는 많이 하지만, 원조를 받은 국가들이 체계적인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건데요, 단지 도와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제도적인 도움, 효율성이 높은 원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지금까지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원조가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전해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북한이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책임 있는 자세도 함께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시작합니다.
- “임산부, 어린이가 먹는 것 군인들은 못 먹나?”
- 장마당 ‘유엔 밀가루’, ‘유엔 약’ 팔리고 있어
- 지원 식량으로 장마당 쌀값 안정에는 기대감
미국과 북한은 지난 8일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위한 24만 톤 규모의 영양지원에 관한 회담을 마무리했습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영양지원에 대한 높은 수준의 분배 감시를 요구해왔는데요, 일단 회담에 나선 미국 국무부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는 “이번 회담에 만족하고 관리상의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에서는 미국의 영양지원과 관련한 북한 주민의 반응을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을 연결해 들어보겠습니다.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이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준호 특파원] 네, 안녕하십니까?
- 미국과 북한이 지난 8일, 중국 북경에서 24만 톤 규모의 영양지원과 분배 감시의 방식 등 기술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특히 미국은 분배 감시의 투명성을 강조했거든요. 영양지원이 취약계층에게 잘 전달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북한 주민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김준호 특파원] 네. 오늘도 북한 주민 몇 명과 만났고, 지난 며칠 동안 중국에 나온 여러 명의 북한 주민과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특히 미국의 영양지원과 관련해 북한 주민의 말을 들어보면 ‘분배 감시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은 군량미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 임산부와 어린이를 위해 곡물이 아닌 비스킷 형태의 영양식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북한 주민은 하나같이 “이게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임산부나 어린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군인들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또 실제로 북한의 군인들도 심각한 영양 결핍상태에 있기 때문에 영양실조 상태인 군인들을 가리켜 “허약 걸렸다”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은 “북한 당국이 미국의 바람대로 취약계층보다는 군인들에게 먼저 식량을 공급하고 일부는 간부들이 착복해 장마당에 팔려나갈 것”이라며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 실제로 언론의 보도를 보면 분배 감시와 관련해 미국과 양측이 다소 견해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어느 정도 분배 감시의 투명성에 동의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김준호 특파원] 분배 감시에 관한 내용 중에는 분배 감시요원이 방문을 원하는 지역을 24시간 전에 통보하면 북한 당국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대부분 북한 주민은 ‘이것도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견해는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24시간이면 분배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연출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라는 거죠. 분배 감시요원 앞에서는 분배를 잘 했다가 감시요원들이 철수하고 난 뒤에는 다시 이를 거둬들이는 것이 이미 수없이 있었던 사실이고, 그런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겁니다.
또 북한 사회는 훈련이 매우 잘 된 조직체이기 때문에 이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건데요, 최근 중국에 나온 함경북도 청진시의 주민은 “장마당에 있는 밀가루나 약품들이 ‘유엔 밀가루’, ‘유엔 약’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팔리고 있는데 이게 다 지원물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북한과 가까운 중국의 접경도시의 한국 상점에는 한국 약 포장지를 들고 와서 “이런 ‘유엔 약’을 살 수 있는냐?”라고 묻는 사람도 많다는 겁니다.
- 식량 지원과 관련해 미국이나 한국, 그리고 ‘세계식량계획(WFP)’을 비롯한 유엔과 민간단체 등에서 분배 감시의 투명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데, 북한 당국에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김준호 특파원] 이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북한 당국이 북한 주민을 통제하는데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미국이 식량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북한 주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특히 분배의 투명성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더욱 알려지지 않는데요, 전혀 이를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설령 지원 사실이 북한 주민에게 알려진다 해도 북한 당국이 다시 이를 왜곡해 주민을 대상으로 교양사업을 펼친다는 것이 북한 주민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과거 한국 정부가 해마다 쌀과 비료를 대규모로 지원했을 때 워낙 규모가 크니까 북한 주민에게 알려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북한 당국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 정치에 두려움을 느낀 남조선이 쌀과 비료를 보내왔다”고 왜곡해서 교양했다는 말을 복수의 북한 주민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이번 미국과 북한 간 영양지원의 합의나 분배 감시의 투명성에 대한 시각은 어떻습니까?
[김준호 특파원] 아무래도 미국 정부가 지원을 결정한 것은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다고 보는 견해가 적지 않습니다.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이번에 미국이 영양지원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과거 부시 행정부 말기에 북한에 테러지원국 해제를 단행한 것”을 연상시킨다고 말합니다.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6자회담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수단으로 분배 감시의 투명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도 이를 단행하고 있다는 지적인데요, 하지만 “설령 이 지원이 군용으로 전용돼도 북한 군인들이 영양 결핍상태이기 때문에 대상만 바뀔 뿐이지 지원 의도가 완전히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또 “지원된 식량의 일부가 장마당 등에 유출돼도 이로 인해 장마당 쌀값이라도 좀 내리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냐?”라며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대규모 식량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인데요, 분배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가 어렵다는 생각에서 이를 두고 미국과 북한의 줄다리기가 팽팽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 네 김준호 특파원,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늘 소식 감사합니다.
[김준호 특파원]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에 관한 북한 주민의 반응과 시각에 대해 중국의 김준호 특파원과 함께 살펴봤습니다.
지난달 자유아시아방송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0명 전원이 ‘북한에 있을 때 지원된 식량을 받아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응답자의 10명 중 8명가량은 ‘그래도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혼자 잘살고 있다는 죄책감과 함께 북한의 군인도 똑같은 자식이라는 연민, 그리고 식량이 지원되면 장마당 쌀값의 안정을 이끌어 일반 주민의 생활에 간접적인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미국의 이번 영양지원이 꼭 필요한 북한의 주민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