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학생의 미국 연방 의회 방문기

탈북자 출신 지철호 인턴기자와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탈북자 출신 지철호 인턴기자와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 (RFA PHOTO/ 노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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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미국의 심장이자 수도인 워싱턴DC에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인 국회의사당이 있습니다. 워싱턴의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한데요, 웅장한 돔 형식의 본청 건물과 양옆으로 들어선 상원과 하원 건물은 엄청난 규모와 상징 면에서 미국의 권력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탈북자 출신 지철호 인턴기자와 함께 미국 연방 의회를 다녀왔습니다.

3월의 끝자락인 지난 3월 25일. 우리는 미국 연방 의회, 그중에서도 하원 건물인 'Rayburn' 빌딩 앞에 도착했습니다.

- 여기가 연방 의회 건물입니다. 한번 와보고 싶다고 했는데 소감이 어때요?

[지철호] 일단 영화에서만 흔히 보던 의회인데 직접 와서 보니 더 크고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치사들이 여기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아요.

- 실제로 연방 의회를 방문하기에 앞서 어떤 기대가 있나요?

[지철호] 영화에서 보던 미국 의회는 예술적인 요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국회를 직접 방문하면서 예술적인 면보다도 진지하게, 그리고 '영화에서 배제된 또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습니다.

- 그래요. 이제 의회 안의 구석구석을 보게 될 건데요. 같이 한번 들어가 볼까요?

[지철호] 네. 그럴까요?

미국 연방 의회는 연방 정부의 입법부로서 법을 제정하고 폐지하며 개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또 세금의 규모를 결정하거나 정부의 예산도 승인하는데요, 연방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법률이 제정되려면 상원과 하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요, 상원과 하원은 입법 과정에 있어 대등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미국의 연방법을 만들고 폐지하며, 개정하는 연방 의회를 탈북자 출신 지철호 씨가 직접 방문한 건데요, 보안을 위해 몸에 지니고 있는 물건을 다 내려놓고 무난히 검색대를 통과했습니다. 법을 만드는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지만, 누구나 쉽게 연방 의회를 방문할 수 있도록 문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에 철호 씨는 첫 번째로 놀랐는데요,

[지철호] 저는 (북한처럼) 아무나 출입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와보니 아무나 들어가 볼 수 있고, 자기의 주장을 말할 수 있고, 자신의 권리에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장소가 있다는 것, "알 권리가 최대한 보장된 곳이 미국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보니 방도 많고 복잡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미국인들이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곳이면 마주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요, 법안과 관련해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또 법안과 관련한 청문회나 회의가 열리는 방에도 법안 관계자나 이에 관심을 둔 국민이 직접 참석해 의원들의 말을 경청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도 직접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데요,

미국 연방의회를 방문한 탈북자 지철호 씨. RFA PHOTO/ 노정민
미국 연방의회를 방문한 탈북자 지철호 씨. RFA PHOTO/ 노정민

- 우리가 지금 봤지만, 관광객도 많이 오거든요. 미국의 입법기관인 의회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국민이 입법기관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죠. 어떻게 보셨어요?

[지철호] 저는 미국이야말로 인간의 기본 권리인 알 권리를 최대한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소리로 듣는 것과 달리 우리가 직접 의회를 참관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잖아요. 실제로 보니까 '나도 앞으로 일이 생기면 바로 여기로 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미국의 연방 의회 건물은 규모가 엄청나지만 지하로 모두 연결돼있습니다. 하원에서 상원으로, 상원에서 하원으로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데요, 연방 의회 건물 지하에 있는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Rayburn'에 이어 또 다른 하원 건물인 'Longworth'에서는 때마침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DMZ, 즉 비무장지대를 조명한 특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두 분단선'이란 제목의 사진전은 한국의 군사분계선과 독일이 통일되기 전 옛 동서독의 접경 지역인 '그뤼네스반트'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요, 이 사진전은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 미국 연방하원의원과 한국의 경기도가 공동으로 주최했습니다.

- 자, 우리 사진을 좀 볼까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6, 25전쟁 발발 당시부터 남북 분단의 비극을 사진에 다 담고 있는데 이쪽을 보면 'JSA, 공동경비구역'의 한국군과 북한 군인의 모습도 보여주고요. 어찌 보면 남북 분단의 현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그런 사진인 것 같아요.

[지철호] 그러네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한반도는 하나였는데 끊겨있구나, 결국 나라의 맥이 끊겨있구나" 이런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텔레비전을 볼 때 이곳이 나와요. 그럴 때마다 "왜 같은 민족인데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북한의 체제가 외부사회에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 여기 한 할아버지가 철책선에 눈을 감을 채 머리를 기대고 굉장히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있는데 이 밑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한번 읽어볼까요?

[지철호] DMZ 철책선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는 듯한 노인, 이 철책선이 들어섰을 당시 그는 앳된 소년이었을 것이다. 두고 온 고향을 잊지 못하는 실향민의 아픔이 절절히 전해져온다.

- 네, 실향민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철호] 너무 가슴 아픈 것 같아요.

- 이쪽은 또 이념에 따라 동•서독으로 분단됐던 독일의 상황을 담은 사진들이 있는데요? 쭉 보니까 가장 인상적인 사진 두 개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베를린장벽 때문에 헤어진 형제가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다시 만나는 사진인데요, 한반도로 비유하면 휴전선으로 나뉘었던 남북의 형제가 다시 만나는 것이잖아요.

[지철호] 저 같은 경우는 형제들이 다 왔는데요. 형제를 북한에 두고 온 탈북자분들이나 실향민분들은 아마 한반도가 통일되면 울 것 같아요. 눈물바다가 되어서 만날 거 같아요.

- 그리고 여기 이사진이 좀 인상적이네요. 대사관 철문 사이를 두고 작별인사를 하는 동독인 모녀 사진인데요, '엄마는 동독으로 돌아가고 딸은 난민과 함께 서독을 택했다'...결국 혈육을 나눈 모녀지간인데 이념에 따라 한 사람은 다시 공산주의인 동독으로 돌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망명하는 사진입니다. 작별인사를 하는 마지막 모습인데...

[지철호] 일단 이 사진을 보니까 16년 전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그때 엄마를 보낼 때도 이렇게 배웅해 줬고요. 그리고 누나를 중국에 보낼 때도 배웅해 줬거든요. 저는 가족과 집의 계급을 위해서 남아야 했고, 누나와 엄마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중국으로 떠났는데, 이 철문이 두만강을 사이에 둔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것 같습니다. 눈물 없이는 못 볼 사진인 것 같습니다.

이날 사진전에는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도 참석했는데요, 철호 씨가 용기를 내어 에드 로이스 의원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 Sir, How are you? He is from North Korea...

늘 북한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온 에드 로이스 의원은 철호 씨가 북한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자 매우 반가워하며 격려해줬는데요,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자신이 미국 연방 하원의 외교위원장과 나란히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뿌듯한데요,

[지철호] 미국이란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위해 활동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주는 것을 알 수 있었고요. 또 미국이 현재 세계 정상에서 모든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힘만이 아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고 도와주는 데 있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사진전 관람을 마치고 지하 통로를 거쳐 의회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세 개의 건물로 구성된 의회 도서관은 서재 공간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연구 성과나 업적, 중요도에서도 단연 으뜸입니다.

게다가 의회 도서관도 대중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데요, 이렇게 중요한 기관이 일반 국민에게 개방되고,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서 철호 씨는 북한과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느낍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 그 미국을 위한 법을 만드는 연방 의회를 견학하면서 철호 씨는 북한이나 한국에 있었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넓은 세상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멋진 양복을 입고 의회 건물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도 당당하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꿈도 생깁니다.

- 자, 연방 의회 견학을 마치고 나왔는데요. 오늘 의회를 방문한 소감을 짧게 말해 본다면요?

[지철호] 일단 너무 가슴이 벅차고 감개무량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제가 북한에서 살았다면 해외에 나올 수도 없었고, 또 북한에 있는 최고인민회의 건물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거든요. 그런데 저 같이 촌에서 살던 사람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연방 의회까지 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행복한 것 같습니다.

- 특히 연방 의회를 견학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지철호] 네, 하나는 확실하게 배운 것 같아요. 연방 의회에 가 보니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을 보고 '아, 나도 나의 주장을 말할 수 있겠구나!, 그 주장들이 받아들여지면 법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라는 거죠. 결론적으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말을 우선시한다면, 이곳 미국에서는 국민의 의사가 존중해 법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국가로서의 명예로 지켜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 이런 것들이 북한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철호 씨는 이날 하루 미국의 입법 기관인 연방 의회 건물을 그저 한 번 방문한 것에 불과한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철호 씨의 눈에 비친, 그리고 철호 씨의 마음에 새겨진 것은 북한 어디에서도 체험하지 못했던 자유와 권리, 그리고 넓은 세상을 무대로 한 큰 꿈이었습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